새롭게 단장한 암스테르담 리크스뮤지엄(Rijksmuseum)은 여러 면에서 자신이 단순한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전체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곳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책 『100가지 물건으로 보는 네덜란드 역사』는 바로 이러한 박물관의 비전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정치권이 아른험(Arnhem)에 새 국립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문제로 수년간 공방을 벌이는 동안, 암스테르담은 조용히 그런 박물관을 만들어 왔습니다. '나와 우리', '물과 땅', '전쟁과 평화' 같은 막연한 테마관이 아니라, 실제 역사 유물을 통해 네덜란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고전적인 건물이 된 것입니다.
그 성과의 하나로 최근 『100가지 물건으로 보는 네덜란드 역사』라는 아름다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새 리크스뮤지엄 개관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2011년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소장품으로 세계사를 짚어낸 『100가지 물건으로 보는 세계의 역사』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당시 그 책이 독자를 매혹적인 세계사 여행으로 인도했다면, 이번에는 리크스뮤지엄이 자체 소장품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네덜란드 역사의 여정을 선사합니다.
예술과 역사
렘브란트, 카렐 아펠(Karel Appel), 페르메이르의 회화가 물론 등장하지만, 인형의 집, 네덜란드 백작의 조각상, 가톨릭 성작, 강제수용소에서 나온 외투 같은 유물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새 리크스뮤지엄 역사부 수석 큐레이터 헤이스 판 데르 함(Gijs van der Ham)은 각 유물마다 네덜란드 역사의 특정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네덜란드 백작의 조각상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조각상은 고린헴(Gorinchem)에서 헨트(Ghent)로 가던 길에 1465년 세상을 떠난 이자벨 드 부르봉(Isabella van Bourbon)의 무덤 위에 놓인 55cm 높이의 묘비상 중 하나입니다. 원래 귀족들의 조각상 스물네 점이 있었는데, 이 조각상은 이자벨의 증조부인 바이에른의 알브레흐트(Albrecht of Bavaria)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알브레흐트는 조각상이 만들어질 당시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가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은 부르고뉴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알브레흐트는 홀란트, 제일란트, 에노(Hainaut)를 통치했으며, 이 지위는 훗날 부르고뉴 공작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부르봉 왕조는 네덜란드 중세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옛것과 새것
1614년 아드리안 판 더 베너(Adriaen van de Venne)가 그린 회화 『영혼 낚시(De Zielenvisserij)』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화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을 풍자했습니다. 폭이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이 그림에는 수많은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물에서 사람들을 낚아 올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개신교 쪽 배는 안정적으로 떠 있는 반면 가톨릭 쪽 배는 거의 가라앉을 지경입니다. 개신교 쪽(왼쪽)의 나무는 활짝 꽃핀 반면, 가톨릭 쪽의 나무는 거의 시들어 있습니다.
강 언덕에는 교회 인사들뿐 아니라 스페인에 맞선 80년 전쟁의 정치 지도자들도 등장합니다. 왼쪽 언덕에는 프레데릭 헨드릭과 마우리츠, 그리고 유럽의 개신교 제후들이, 오른쪽에는 남부 네덜란드를 다스리던 스페인 총독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판 더 베너가 이 그림을 누구를 위해, 어떤 이유로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오라녜(Orange)와 개신교야말로 미래라는 것입니다.
책에 실린 100점 유물에 대한 해설은 비교적 간결하지만, 결코 전문성이나 명료함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유물들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연대기처럼 이야기를 이룹니다. 흥미롭게도 첫 번째 유물인 1490년경 회화 『엘리자베트 홍수(The Elisabeth Flood)』가 가장 오래된 작품은 아닙니다. 도르드레흐트(Dordrecht) 일대를 덮친 참혹한 홍수를 그린 이 작품은 프롤로그로 선택되었는데, 그 이유는 물과 싸워온 네덜란드인의 역사가 네덜란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줄거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인은 없다
책의 마지막 유물 역시 특별합니다. 2007년 아르노 코넨(Arno Coenen)이 만든 작품 'Oud West Thuis Best'입니다. 이 작품은 이민과 다문화 사회 등 현대의 여러 변화를 반영합니다. 두 명의 킥복싱 선수가 중심에 있고, 오라녜 공 빌럼(Willem van Oranje)의 초상도 들어 있습니다. 옆면은 전통 모로코 타일로 장식되어 있지만, 암스테르담의 상징인 세 개의 십자가 무늬도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랍어 문구에는 '그래도 그들은 우리의 모로코인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책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에그몬트(Egmond) 수도원 교회의 사도 베드로 석조 부조로, 1140년경 제작되었습니다(다만 그 돌 자체는 900년경부터 석관 뚜껑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아쉽게도 선사시대, 로마 시대, 초기 중세 등 네덜란드의 가장 이른 역사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시기의 유물이 리크스뮤지엄 소장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피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판 데르 함은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마침내 네덜란드의 과거가 한곳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유물과 해설은 네덜란드 역사를 거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딱 100점뿐이라는 점이 오히려 아쉬울 정도입니다. 책에 소개된 유물들은 암스테르담 리크스뮤지엄을 방문하면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