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네덜란드 테르 하이데(Ter Heijde) 인근 해안의 인공 모래둑 '잔드모토르(Zandmotor)'에서 발견된 토끼 턱뼈가 무려 3만5천 년 이상 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마지막 빙하기 당시 이 토끼가 매머드, 코뿔소, 들소가 어우러진 광활한 스텝 초원을 뛰어다녔음을 의미합니다.
매머드 스텝에 살았던 토끼
'매머드 스텝'이라고 하면 긴 털의 거대한 매머드와 양털코뿔소, 순록이 연상되기 쉽습니다.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 팬이라면 다람쥐까지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작 토끼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올여름 테르 하이데와 카이크둔(Kijkduin) 사이 해안에 조성된 잔드모토르 근처에서 선사시대 토끼의 턱뼈가 발견되었고, 그 연령이 3만5천 년을 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화석을 감정한 로테르담 자연사박물관의 연구자 딕 몰(Dick Mol)은 "이 토끼는 마지막 빙하기에 현재의 북해 해저에서 매머드들과 함께 살았다는 뜻"이라며, 빙하기 토끼 화석이 북해 해저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바닷속에 잠긴 북해 해저, 한때는 매머드 스텝
약 10만 년 전부터 1만2천 년 전까지 이어진 마지막 빙하기(바이히셀 빙기)에는 남부 북해 대부분이 육지로 드러나 있었고, 이 지역은 거대한 스텝 초원을 이루었습니다. 가장 추웠던 시기의 평균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미터 이상 낮았는데, 물의 상당 부분이 대륙 위의 빙하로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스텝은 북반구 거의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이 시기의 포유류 유해가 북해에서 다수 인양되었는데, 대부분 어부들의 그물에 걸린 부수적 어획물 형태였습니다. 주로 매머드, 야생들소, 말, 코뿔소 같은 대형 동물의 뼈가 해당됩니다. 작은 동물들도 분명 함께 서식했겠지만, 큰 뼈일수록 보존 상태가 좋고 해저에서 건져 올리기도 수월하기 때문에 발견 비율이 높습니다.
남홀란트주 해안의 인공 모래둑인 잔드모토르가 조성된 이후 북해 빙하기 화석 수집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생쥐, 들쥐, 두더지 같은 소형 동물의 뼈와 이빨·어금니도 잇달아 발견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처음으로 토끼 턱뼈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발견자는 헤이그 지질학회 소속 화석 수집가 바버라 마르츠만(Barbara Marsman)입니다.
새로운 발견일까?
그렇다면 이번 발견이 고생물학계를 뒤흔들 만한 것일까요? 몰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시베리아)의 다른 유적지에서 이미 토끼가 매머드 동물군에 속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빙하기에 북해 해저에 살았던 매머드 동물군에도 토끼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야 확인된 것입니다." 그는 이번 발견을 원시 풍경과 그 주민들을 재구성할 때 맞춰지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평가합니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고생물학 명예교수 베르트 부크스호턴(Bert Boekschoten) 역시 특별한 발견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생쥐 같은 작은 동물의 뼈는 때때로 아주 잘 보존됩니다. 예컨대 올빼미 토설 속에 들어간 경우가 그렇죠. 반면 매머드의 골격 일부는 크기가 워낙 커서 오래된 하천골 퇴적층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하지만 토끼는 애매합니다. 크기가 딱 그 사이거든요."
그래서 토끼 유해는 희귀한 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스텝을 뛰어다니던 토끼의 개체 수가 적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