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6세기 최고의 선전 작품, 오라녜 공의 '마지막 유언'

'오 나의 하나님, 나와 이 가난한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오라녜 공 빌럼이 발타자르 제라르츠에게 암살당하기 직전 남긴 것으로 알려진 마지막 말이다. 1584년 7월 10일 델프트 프린선후프에서 벌어진 그 비극적 사건 이후, 수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문장을 암송해 왔다. 그러나 최근 1584년 당시 원본 부검 보고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국부(國父)'로 불리는 그는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어떤 말도 남길 수 없었다는 충격적인 결론이 나왔다.

공식 문서에 처음 등장한 '유언'

오라녜 공의 유명한 마지막 말이 처음 기록된 곳은 암살당한 날인 1584년 7월 10일자 네덜란드 삼중회의(States General) 회의록이다. 공식 문서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어로 "Mon Dieu, mon Dieu, ayez pitié de moi et de ce pauvre peuple"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네덜란드 귀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언어가 바로 프랑스어였다.

그러나 오라녜 공의 죽음 소식과 유언 구절이 실제보다 훨씬 늦게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같은 회의록에는 살해범 발타자르 제라르츠의 공범들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는데, 제라르츠는 암살 직후 체포되었지만 잔혹한 고문을 받던 심야에 이르러서야 배후 세력과 공범에 관한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약 델프트 연구기관 델프테크(Delftech)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부검 보고서를 근거로 내놓은 결론대로 오라녜 공이 즉사했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 그의 지지자들은 빌럼이 이제는 유명해진 마지막 말과 함께 역사에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명예를 지키다

"지당하고 타당한 질문입니다." 라이덴 대학교 근세 네덜란드사 교수 유디트 폴만(Judith Pollmann)의 말이다. 그녀는 80년 전쟁 기간 여론의 역할과 선전 활용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폴만은 먼저 16세기 사람들이 '좋은 임종'에 부여했던 일반적인 중요성을 짚었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가 천국행의 징표인지, 혹은 지옥행의 길인지를 보여준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평생 선하게 살았더라도 분노와 저항 속에서 숨을 거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이미 잃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라녜 공의 경우에는 정치적 차원이 훨씬 중요했다. "암살 당시 그의 반란 진영 내 지도력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가톨릭 신자인 앙주 공작을 네덜란드의 군주로 추대하겠다는 정치적 행보 탓에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지지자를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란 대의에는 오라녜의 명예 훼손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폴만은 계속한다. "오라녜 공이 암살로 죽었다는 사실은 반란의 적들에게 오히려 빌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보라, 오라녜의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반란을 불허하신다는 증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오라녜의 후계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성공적인 선전 공세

결국 지지자들은 오라녜 공의 입에 하나님과 가난한 백성을 언급하는 마지막 말을 넣어줌으로써, 그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안겨주고 동시에 세상에 하나님과 백성의 이름으로 시작된 그의 대업을 계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놀랍도록 성공적인 선전 공세였다. 4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말을 '국부'와 함께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디트 폴만에 따르면 오라녜 공의 이른바 '유언'은 생전에 그가 직접 가동한 정치 선전 장치와 명확하게 맞닿아 있다. "오라녜는 소수의 정치 참모들로 구성된 일종의 싱크탱크와 함께 '네덜란드 조국'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입니다. 각 지역은 서로 크게 달랐고 오히려 그 차이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오라녜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모든 주민에게는 스페인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반란이 실제로는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독립하려는 세력 간의 내전이었지만, 오라녜는 '스페인인'을 새로운 공동의 적으로 규정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라녜의 주장에 따르면 스페인인은 무어인과 유대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잔혹하고 오만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국' 주민들에게 제시된 선택지는 단순했다. 스페인 폭정에 맞선 그의 반란에 동참하든가, 아니면 신대륙의 인디언들처럼 노예가 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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