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검투사라고 하면 누구나 투기장에서 목숨을 건 승부를 벌이는 강건한 남자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기록과 유물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역사학자들은 여성 역시 검투사로 싸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 자료를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볼 계기를 제공한다. 부조에 새겨진 그 강인한 검투사가, 사실은 여인인 것은 아닐까?
검이 부딪치는 소리, 함성, 격앙된 음악, 관중들의 환호. 둔탁한 추락 소리와 함께 더 커지는 환호, 고조되는 음악, 마지막으로 검이 휘파람처럼 울린 뒤 모든 것이 끝난다. 두 명의 검투사가 투기장 한가운데에 서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웠고, 관중들은 충분한 기개가 드러났다고 판단해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져주었다. 그리고 투구가 벗겨지는 순간, 한 사람에게는 긴 머리카락이 곱슬로 흘러내리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를 단정하게 착 올려 묶고 있었다. 폭력의 한복판에서, 검투 복장을 갖춘 두 여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검투의 세계는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검투는 virtus(남성적 기개)와 연결되는 미덕으로, 모든 '진정한' 로마 남성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검투사들은 자신의 몸을 타인의 오락거리로 내주었기에 infames(명예를 잃은 자), 즉 사회적 최하층의 존재였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검투사라는 인간 자체는 천대받았어도 그의 싸움은 virtus의 과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virtus의 발현은 그것을 보여주는 사람의 성별과 무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아마도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여성도 투기장에 올라 검투사로 싸울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남성처럼 여성 역시 로마의 남성성을 보여주는 모범이 될 수 있었고,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드러낸 virtus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여기에 더해, 로마 사회 권력층에게 유희와 인기는 날로 중요해지고 있었고, 남자 외의 '새로운' 싸움꾼을 찾아내는 일은 권력자들에게 하나의 도전 과제이기도 했다.
아킬라와 아마존
최근 수십 년간 역사학자들은 여성 검투사의 존재에 점점 더 많은 주목을 기울여 왔다. 그 증거는 로마 시대의 문헌, 비문, 도상(圖像), 법률 자료 등 다양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과 관련된 자료들이 재검토되어 기술되었고, 이번에는 예전처럼 검투 경기의 우스갯거리로 치부되지 않았다. 스티븐 브루넷, 안나 맥컬로, 토머스 비데만, 마그누스 비스트란드 같은 학자들은 여성들을 훌륭한 승부를 펼칠 수 있는 '진짜' 검투사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은 많다. 지금까지 문헌 자료를 제외하면 여성 검투사를 묘사한 이미지는 단 하나만 알려져 있는데, 바로 캐슬린 콜먼이 기술한 할리카르나소스 부조이다. 이 부조에는 아킬라(Achilla)와 아마존(Amazon)이라는 이름의 두 여성이 새겨져 있다. 부조 하나뿐이라 적어 보이지만, 이는 지금까지 묘사된 검투사들이 무조건 남성으로 해석되어 왔기 때문이 크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여성 검투사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던 데서 비롯된 일이다. 묘사된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는 매우 여성적인 특징을 지닌다. 가슴의 곡선은 여인의 가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그 우아한 자세는 여인의 것은 아닐까?
키아라몬티 부조
바티칸 시티의 박물관 중 하나인 갈레리아 키아라몬티에는 검투사 세 명의 전신과 한 명의 반신을 묘사한 부조 조각이 걸려 있다.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이 검투사들을 모두 남성으로 해석해 왔다. 이 부조는 서기 2세기로 연대가 추정되며, 로마 콜로세움에서 발굴되었다. 검투사들이 맨얼굴에 느긋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승리의 포즈를 담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명 중 완전히 보이는 왼쪽 인물과 오른쪽 인물, 이 두 명은 상당히 여성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결정적인 단서는 자세에서 나온다. 두 검투사는 가운데 남성 검투사보다 훨씬 여성적인 몸짓을 하고 있다. 신체 일부를 감싸며 다리를 붙이는 닫힌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미술사학자들은 이를 '겸손 자세(modesty pose)'라고 부른다. 이는 로마 여성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던 전형적인 자세이다.
좋은 예로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소장된 그리스식 비너스 조각상을 들 수 있다. 이 여성적 자세에서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앞으로 살짝 굽어 몸을 가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두 '여성' 검투사가 등장하는 키아라몬티 부조 조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반면 가운데 검투사는 열린 지배적 자세로 몸통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는데, 로마 제국에서 남성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묘사되곤 했다.
또한 두 '여성' 검투사의 가슴은 가운데 인물보다 훨씬 둥글고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를 C. 루시우스 스토락스의 묘비 부조 등 다른 검투사 부조의 흉상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몸통이 드러난 남성 검투사들은 근육질 남성 신체 특유의 각진 윤곽을 분명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키아라몬티 부조 인물들의 얼굴과 머리카락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을 연상시키는 단서가 발견된다. 가장 오른쪽 인물은 머리카락이 길게 완전히 풀려 내려오는데, 이는 서기 2세기 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에 새겨진 '야만인'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왼쪽 검투사의 헤어스타일은 조금 다른데, 머리를 뒤로 넘긴 듯한 모습으로 이 역시 로마 여성들 사이에서 흔했던 방식이었다. 두 검투사의 얼굴 형태 역시 가운데 남성 동료보다 훨씬 섬세하고 부드럽다.
야만과 문명의 대결
키아라몬티 부조 오른쪽 인물의 맨몸은 '야만인' 여성이라는 해석을 더욱 힘 있게 뒷받침한다. 신화 속 여전사인 아마존 역시 맨 상반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고, 완전한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남성을 위한 자리가 없는 사회를 이루었고,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눈에는 잘못된 성 역할 질서를 따르는 존재였다. 고대에 진실로 믿어졌던 이 신화는 문명과 야만의 투쟁을 상징하는 서사였다.
오른쪽 인물이 아마존형을 연상시킨다면, 왼쪽 인물이 로마 여성의 외적 특징을 더 많이 지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야만인과 문명인의 대결이 이 작은 부조 안에 축소판으로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존과의 비교는 할리카르나소스 부조에서도 이미 확인할 수 있으며,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 역시 『실바이(Silvae)』(1.6.51-56)에서 여성 검투사와 아마존을 연결 지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여성 검투사가 오랫동안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기록은 최근까지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미시오(missio): 목숨을 건 승부의 규칙
할리카르나소스 부조와 마찬가지로, 갈레리아 키아라몬티 부조의 검투사들도 서기 2세기로 연대를 정할 수 있다. 즉 당시 여성 검투사의 묘사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고, 여성 검투사라는 현상 자체도 자연스럽게 존재했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관념, 즉 남녀 검투사는 서로 대결하지 않고 항상 동등한 상대와만 싸웠다는 생각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야 virtus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조에서도 두 남성과 두 여성이 각각 서로 맞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싸움꾼이 모두 충분한 virtus를 보였다면 둘 다 생존할 수도 있었다. 훈련된 검투사가 매 경기마다 죽는 것은 너무나 큰 비용이 들었기에, 좋은 승부를 펼친 검투사는 missio(경기 면제)를 통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과연 이 부조 조각 뒤에도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치열한 승부 끝에 두 여성이 충분한 기개를 증명해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았고, 이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장면인 것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갈레리아 키아라몬티의 부조 조각은 아마도 여성 검투사를 보여주고 있다. 두 검투사의 외모와 자세는 여성을 강하게 연상시키며, 기존 학계의 통설처럼 남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여성 검투사를 묘사한 또 다른 부조가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여성 검투사가 이미 여러 자료에 등장한다는 점 역시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키아라몬티 부조가 유일한 검투사 부조는 아니다. 기존 자료를 이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면, 다른 검투사 부조들이 어떤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여성 검투사에 대한 증거가 더 많이 발견될수록, 이 '기묘한' 집단을 남성 중심의 로마 사회 속에서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