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에 형성된 오래된 도시 옥스퍼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대학교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잉글랜드 남동부에 위치한 옥스퍼드셔 주의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며, 수 세기 동안 케임브리지와 학문적 위상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이어왔습니다.
옥스퍼드는 학자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왕실과 깊은 인연을 지닌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은 요새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12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정확한 설립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초의 강의 기록은 10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꿈꾸는 첨탑의 도시(City of Dreaming Spires)'로 불리는 옥스퍼드는 오늘날 활기찬 국제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수많은 관광명소, 컬리지(college), 박물관들이 방문객에게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 줍니다.
템스강과 처웰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도시라서 이름 자체도 그림 같은 유래를 담고 있습니다. 옥스퍼드(Oxford)는 문자 그대로 '소(Ox)가 강을 건너는 여울(Ford)'이라는 의미입니다.
옥스퍼드의 초기 역사 – 중세 시대
잉글랜드의 요새 도시들 가운데 옥스퍼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웨섹스의 왕인 알프레드 대제(Alfred the Great)가 9세기에 이러한 입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옥스나포드(Oxnaford)'는 고대 영어로 쓰인 초기 명칭입니다. 옥스퍼드 일대에서 템스강이 여러 개의 물줄기로 나뉘어 소를 몰고 강을 건너기에 완벽한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옥스퍼드는 11세기에 머시아 왕국과 웨섹스 왕국 사이의 군사 거점이자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덴마크의 공격을 겪은 이후 옥스퍼드는 덴마크인 학살의 현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덴마크는 잉글랜드 왕위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1066년 노르만 정복 당시 옥스퍼드는 크게 파괴되었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옥스퍼드 성이 건설되었습니다. 무정부 시대에는 마틸다 왕비가 이곳 성에 유폐되기도 했습니다.
14~15세기에는 제빵사, 재단사, 구두장이 등 장인들이 인기를 끌면서 옥스퍼드는 의류와 가죽 제품으로 명성을 얻는 생산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옥스퍼드 성(Oxford Castle)
옥스퍼드 성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대규모 중세 성으로, 일부는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성 내부에 자리했던 감옥은 특별한 볼거리로, 오늘날에는 호텔로 탈바꿈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의 축조는 노르만 귀족 로버트 도일리(Robert D'Oyly)의 공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이 성을 통해 도시를 통치했습니다. 12세기 말에는 최초의 흙 성책(motte)이 석조 건축물로 대체되었습니다. 1074년에 지어진 세인트 조지 예배당은 훗날 옥스퍼드 대학교의 씨앗이 된 곳입니다.

17세기(원문은 18세기로 표기) 잉글랜드 내전 때 성은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새로운 감옥이 세워졌습니다.
1142년에는 마틸다 왕비가 내전 중 이 성에 피신했습니다. 이는 스티븐 왕과 마틸다 왕비 사이의 극적인 권력 다툼을 상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인트 조지 타워에 오르면 옥스퍼드의 아름다운 첨탑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왜 옥스퍼드는 '꿈꾸는 첨탑의 도시'라고 불릴까?
'꿈꾸는 첨탑(Dreaming Spires)'이라는 표현은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가 1866년 발표한 시 『티르시스(Thyrsi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매혹적인 별칭은 옥스퍼드의 웅장한 건축물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중세 디자인의 대학 건물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경이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냅니다. 매튜 아놀드는 "꿈꾸는 첨탑을 지닌 달콤한 도시"라며 옥스퍼드의 아늑함과 매력을 시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시는 꽤 긴 분량인데, 어쩌면 1863 단어로도 옥스퍼드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기 부족해서일지 모릅니다. 사실 이 시는 그의 친구 아서 클로(Arthur Clough)에 대한 헌사로, 두 사람이 학생 시절 옥스퍼드의 풍경을 함께 탐험했던 추억을 그린 작품입니다. 티르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목동 시인으로, 아서 클로우를 상징합니다.
동화 같은 옥스퍼드의 풍경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 배경이 되며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중세 옥스퍼드의 전형적인 학생은 누구였을까?
엄격한 설립일은 없지만, 옥스퍼드 대학교는 14세기에 이미 확고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1920년까지 여성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모든 학생은 남성이었습니다.
또한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만 입학할 수 있었고, 기독교 교회에 봉직하는 성직자(clerk)들이 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학생들은 보통 16세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입학 연령 하한선이 10세였던 프랑스 툴루즈 대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점입니다.
중세 학생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기 위해 유럽 여러 대학을 오가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출신 계층은 대개 중산층이었으며, 라틴어가 대학의 공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16세기의 옥스퍼드
번영의 절정은 아니었지만, 16세기 옥스퍼드는 잉글랜드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542년에는 도시(city) 지위를 부여받으며 위상을 더했습니다.
대학은 도시 삶의 모든 면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경제 발전은 대규모 학생 시장에 의존했는데, 여기에는 교재뿐 아니라 맥주, 음식, 의류 등 다양한 상품이 포함되었습니다.

페스트(흑사병)는 당시 모든 도시가 그랬듯 옥스퍼드에도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깊은 사회·종교적 변화는 수도원과 수녀원의 해체로 이어졌습니다. 수도원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가운데, 옥스퍼드는 1542년 주교 관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시 사회가 낡은 중세 질서를 대체해 갔습니다.
대학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도시는 더욱 우아한 모습으로 다듬어졌습니다.
17세기 내전과 옥스퍼드
1642년 왕과 의회 사이에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흔히 원두파(Roundheads)와 기병파(Cavaliers)의 대결로 알려진 이 전쟁의 핵심 쟁점은 종교의 자유와 잉글랜드의 통치였습니다.
1651년 우스터 전투에서 의회파가 승리하며 전쟁은 막을 내렸고, 잉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 공화국(Commonwealth)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즉 공화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17세기에는 새로운 음료가 유행했습니다. 새롭게 문을 연 커피하우스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즐길 수 있는 커피였습니다. 옥스퍼드는 매혹적인 건축 미학 속에서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한편 17세기에는 학생들로 인한 소요 사태가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1658년의 첫 사건은 시장과의 충돌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건축이 새로운 빛으로 주목받던 시기였고, 그 결과 우아한 신축 건물들이 늘어섰습니다.
18세기, 시장 도시로서의 의미
18세기 옥스퍼드는 작은 시장 도시에서 대학 중심의 도시로 관심의 초점을 바꿔 나갔습니다. 장인들의 솜씨가 거리를 채우며 옥스퍼드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었습니다.

1708년에는 남아들을 위한 자선학교인 블루코트 스쿨(Bluecoat School)이 문을 열었습니다.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교통량이 폭증했고, 이에 따라 1774년 실내 시장(커버드 마켓)이 건설되었습니다.
새로운 건설 붐 속에서 1776년에는 새로운 도로가, 1779년에는 매들린 교(Magdalen Bridge)가 놓였고, 호크스베리와 코번트리를 잇는 운하도 건설되었습니다.
통나무집이 일반적이던 시절이었지만, 1702년에는 가장 뛰어난 석조 저택 중 하나가 세워졌습니다. 세인트 자일스 하우스(St. Giles' House)는 19세기에 판사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인트 존스 컬리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옥스퍼드 중심가에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어 대학 건물들에 둘러싸인 래드클리프 스퀘어(Radcliffe Square)가 완성되었습니다.
19~20세기의 현대적 발전
1835년 지방정부법(Local Government Act)에 따라 옥스퍼드는 교외 지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890년에는 카운티 자치체가 되어 더욱 독립적인 행정 단위로 거듭났습니다.
새로운 병원 건설, 가로등 설치, 현대식 하수도 시스템 구축 등 생활 환경 개선도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19세기에만 세 차례에 걸쳐 콜레라 유행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1844년 런던행 철도가 개통되면서 옥스퍼드에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 중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공업이 크게 번성하여 잼 산업과 출판업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를 이끈 것은 생산이 아니라 여전히 대학이었습니다.
서머타운(Summerstown)과 제리코(Jericho) 같은 옥스퍼드 교외에는 노동자 계층을 위한 주택들이 다수 지어졌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 옥스퍼드는 중요한 공업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1910년에는 첫 영화관이 문을 열었고, 여러 신규 병원, 박물관, 정원이 도시의 추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오늘날 옥스퍼드는 약 15만 4천 명의 인구가 거주하며, 자동차 생산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의 흔적은 12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확실한 설립 증거는 없지만, 강의는 1096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파리 대학교를 모델로 삼으면서 초기 학생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왔고, 이것이 12세기 급성장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헨리 2세가 잉글랜드 학생들의 파리 대학교 유학을 금지하면서 옥스퍼드가 더욱 성장했습니다.

신학, 법학, 의학, 자유교양이 최초 학부들의 전반을 이루었습니다. 대학은 전용 건물 없이도 발전했는데, 이는 대학의 역량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임대 강당과 교회가 그 부족함을 대신했습니다.
학생들은 지리적 출신에 따라 트렌트 강 이북의 '노스'와 이남의 '사우스'로 나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컬리지는 1249년에서 1269년 사이에 설립된 발리올(Balliol)과 머튼(Merton)입니다.
14세기에 이르러 대학은 교황, 왕, 학자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대학의 운영 방식
옥스퍼드는 38개의 컬리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컬리지는 고유한 규칙을 갖지만 대학의 관할 아래 운영됩니다. 하나의 메인 캠퍼스는 존재하지 않고, 컬리지와 부속 시설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가장 큰 컬리지는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로, 옥스퍼드 성공회 대성당의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보들리언 도서관(Bodleian Library)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로 특별한 위상을 지니며, 동양 사본과 영문학, 지방사 관련 귀중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사 박물관인 애슈몰린 미술관·고고학 박물관(Ashmolean Museum)도 옥스퍼드의 자랑입니다. 옥스퍼드의 네 개 박물관 가운데에는 1924년에 설립된 과학사 박물관(Museum of the History of Science)처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대형 박물관도 있습니다.
인류학과 고고학을 전문으로 하는 피트 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은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컬리지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대학 관할의 대표 건물로는 래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 셸도니안 극장(Sheldonian Theatre), 응시학교(Examination Schools) 등이 있습니다.
대학의 근대와 현대
근대에 들어 1878년 옥스퍼드 최초의 여성 컬리지인 레이디 마거릿 홀(Lady Margaret Hall)이 문을 열었습니다. 다만 여성의 정식 회원 자격은 1920년에야 완전히 인정되었습니다.
현대 교육의 첫 씨앗은 과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언어학과 경제학을 포함한 새로운 컬리지들이 생겨났고, 대학원 과정이 특별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오늘날 옥스퍼드 대학교의 학생 구성은 대부분 국제학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40개국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그중에서도 중국과 미국 출신이 가장 많습니다. 자발적인 봉사 활동이 대학의 사회 생활에 활력을 더합니다.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높아진 지금, 옥스퍼드는 유학하기 좋은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의 필수 관광명소
옥스퍼드의 몽환적인 첨탑들은 이 도시가 지닌 아름다움으로 방문객을 사로잡습니다. 건축물, 역사, 그리고 가장 오래된 대학이 결정적인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카팩스 타워(Carfax Tower)는 네 개의 주요 거리가 만나는 지점을 지키며, 타워 위에서 펼쳐지는 절경은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합니다.

옥스퍼드의 시적인 영혼은 이 매력적인 도시의 가장 숨겨진 구석까지 스며듭니다. 영감을 주는 자갈길은 마치 해리 포터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모든 컬리지가 각별한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곳은 단연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입니다. 이 웅장한 건물은 한때 찰스 1세의 왕립 의회로 사용되었으며 독특한 역할을 지닙니다. 바로 영화 『해리 포터』의 촬영지이기 때문입니다.
매들린 컬리지(Magdalen College)는 건물을 둘러싼 사슴 공원의 고요한 순간에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케블 컬리지(Keble College)는 부드러운 색채가 어우러진 외관으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셸도니안 극장은 졸업식 등 각종 의전 행사가 열리는 곳이자 다양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래드클리프 카메라와 보들리언 도서관
옥스퍼드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인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보들리언 도서관의 방대한 소장품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원형 도서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웅장한 대학 건물들에 둘러싸인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히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역사는 17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영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의 사본을 소장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닌 곳입니다.
보들리언 도서관 옆 디비니티 스쿨(Divinity School)의 천장 장식은 아름다운 예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공원과 녹지 공간
옥스퍼드는 품은 녹지 공간 덕분에 여유로운 매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어우러진 수많은 우아한 공원들이 도시의 품격을 높입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메도우(Christ Church Meadow)는 아이시스 강(템스 강)과 처웰 강을 따라 펼쳐지는 목가적인 명소입니다. 보트 나들이를 즐기거나 피크닉을 계획한다면, 중세의 보물 같은 이 도시 속 오아시스를 놓치지 마세요.

1621년에 조성된 옥스퍼드 식물원(Oxford Botanic Garden)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 중 하나입니다. 옥스퍼드 중심가에서 열대 식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배움의 즐거움도 얻을 수 있습니다. 장미의 향기를 맡고 온실을 둘러보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포트 메도우(Port Meadow)는 템스 강 북쪽 기슭에서 빛을 발합니다. 소와 말들이 평온함을 더하고, 펍 정원의 공작새들도 방문객을 반겨줍니다.
대학 공원(University Parks)은 처웰 강변을 따라 다양한 산책로를 제공합니다. 걷는 내내 시골의 정취까지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맺음말 – 옥스퍼드의 역사
매혹적인 건축물은 옥스퍼드의 명망 높은 위상과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컬리지들의 연결망 속에 이 독특한 도시의 매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공원과 풍부한 녹지는 옥스퍼드에 모험 같은 분위기를 더합니다.
보들리언 도서관과 애슈몰린 박물관에서 시작된 옥스퍼드의 매혹적인 화려함은 상징적인 컬리지들로 이어집니다. 애칭 '감탄의 다리(Bridge of Sighs)'로 불리는 허트포드 교(Hertford Bridge)는 그 매력을 배가시킵니다.
도시의 전경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성모 마리아 대학교회(University Church of St Mary the Virgin)의 탑은 그 완벽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옥스퍼드의 보행자 거리는 역사와 무한한 가능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케임브리지와의 라이벌 관계조차 옥스퍼드의 놀라운 매력을 여는 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