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포그도리아니 – 술레이만 대제가 어머니와 아내를 머물게 했던 숨겨진 마을

그리스와 알바니아 국경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 않은 곳, 카시디아리 산(Mount Kasidiari)과 소시누 언덕(Sossinou Hill) 사이 깊숙이 숨겨진 마을이 있다. 지금의 이름은 아노 파라칼라모스(Ano Parakalamos)다.

겨울철에는 겨우 25명 정도의 상주 주민만이 살아가는 이 작은 마을에는 놀랍게도 과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Suleiman the Magnificent)의 어머니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a)과, 그의 가장 유명한 아내였던 휘렘 술탄(Hürrem Sultan)이 머문 적이 있다.

이 두 여성 사이의 권력 다툼은 문자 그대로 역사에 기록될 만큼 치열했다. 술레이만은 궁궐 안의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두 사람을 분리시켜야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왜 하필 포그도리아니였을까?

발리데 술탄과 휘렘의 '유배지'로 포그도리아니가 선택된 이유는 하나로 명확하다. 실질적으로는 유배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이러한 신분의 인물들을 안치하기에 매우 안전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술레이만 입장에서는 자신의 네 아이를 낳은 휘렘이든,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든 진정으로 유배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그는 어머니를 위해 포그도리아니 일대 전역을 '데스포타트(공국)'로 선포했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파라칼라모스, 데스포타트의 중심지였던 아노 파라칼라모스, 현재는 버려져 주민들이 새 마브로노로스로 이주한 팔레오 마브로노로스(Paleo Mavronoros), 그리고 시타리아 등의 마을들이 포함된다. 이 마을들은 지금 몇몇 다른 마을들과 함께 칼라마스(Kalamas) 지자체를 이루고 있다.

번영의 시절

포그도리아니는 엄청난 경제적 호황을 누리며 무역의 중심지로 손꼽혔다. 지역 주민들은 발리데 술탄이 허락한 특권 덕분에 종교의 자유는 물론, 자신들의 언어를 지킬 수 있는 자유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약탈과 방화, 그리고 버려진 마을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가 저물어 가던 무렵, 이 지역은 당시 터키 지배하의 에피루스에서 활동하며 에피루스 결사와 손을 잡은 게릴라 부대들에게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반군은 터키군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터키군은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발리데 술탄 관저에 있던 귀중품과 재보를 지키지 못했다. 훗날 알려진 바로는 부상당한 터키 병사들, 어쩌면 사망자 일부까지 요아니나(Ioannina)로 향하는 마차에 실려 나갔다고 한다. 반관 쪽에서는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이들은 주변 고지대의 유리한 위치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워낙 잘 아는 지형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결국 마을은 두 번째 방화 이후 완전히 비게 되었다.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오늘날의 파라칼라모스를 세웠는데, 이곳은 최근 인구 조사 기준 약 1,000명의 상주 주민을 거느린 포고니 지역의 중심 마을이 되었다(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며,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보물 전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미스터리가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은 발리데 술탄의 저택에 있던 보물의 상당 부분이 아직도 마을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 믿는다.

실제로 며칠간 마을을 배회하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낯선 이들을 주민들이 목격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떤 이들은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마을에 남아 있는 집—버려졌든 사람이 살고 있든—을 사들인 뒤 철거해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그 집을 원래 소유주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되돌려준 것으로 관찰되기도 했다.

파블로스 멜라스의 고향

마케도니아 투쟁의 영웅 파블로스 멜라스(Pavlos Melas) 역시 아노 파라칼라모스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멜라스 가문은 파라칼라모스 출신이지만, 그 본인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생활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

특히 그의 아버지 미하일 멜라스(Michail Melas)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집의 폐허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마을에서 페도니아(Paedonia) 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