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치 지하드: 히틀러는 이슬람의 힘을 빌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1945년 4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하루 전날, 히틀러는 문득 하나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나치즘과 지하드(성전)를 결합해 예언자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공세를 펼쳤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를린 인근의 지하 벙커 안에서 그는 자신이 결코 누리지 못한 영광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원인은 오직 배신적인 측근들 탓이라며 한탄했다.

"이슬람 세계 전체가 우리의 승전 소식에 떨리고 있었다. 이집트인들과 이라크인들, 중동 전역은 반란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이슬람을 향해 빛나는 정책을 펼칠 절호의 기회를 손에 넣었었다!"

실제로 제3제국은 그런 '빛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처지였다. 무슬림들 역시, 적어도 중동 주민 상당수는, 그런 흐름에 열려 있었다.

나치 지하드: 히틀러는 이슬람의 힘을 빌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 대무프티, 알후세이니

나치즘은 모하마드 아민 알후세이니라는 광신적으로 헌신적인 지지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1921년부터 예루살렘 대무프티로서, 사실상 팔레스타인 무슬림 공동체의 최고위·최고 서열의 대표였다. 1933년 이후 퓌러의 반유대주의 메시지는 그를 비롯한 수많은 급진주의자들을 매혹적인 힘으로 사로잡았다.

크리스토퍼 헤일은 저서 『히틀러의 처형자들: 유럽의 더러운 비밀』에서 "히틀러를 사로잡은 광기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수많은 구석까지 악성 발진처럼 번졌다"고 적었다(340쪽).

무프티는 팔레스타인에 살던 50만 명의 유대인 인구를 상대로 본격적인 증오 캠페인을 벌였다. 1937년 아랍 봉기 당시 그에게 고무된 무장 단체들은 유대인들과, 그들을 위임통치 아래 묵인하던 영국인들을 공격했다. 결국 알후세이니는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결의는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그는 먼저 베이루트로 옮겨가 유대교 신자들의 말살을 열정적으로 호소했고, 전쟁이 시작되자 바그다드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그는 마치 제3제국을 대신하는 듯, 정권을 전복하고 '나치 지하드'를 일으키려던 반란을 조직하는 데 일조했다. 크리스토퍼 헤일은 이렇게 기록한다.

"[알후세이니]는 친나치 성향의 이라크 민족주의자 라시드 알리 알길라니와 공모해 친영국 하심 왕조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1941년 5월 (...) 이라크군은 하바니야의 영국 공군 기지를 포위했다."
나치 지하드: 히틀러는 이슬람의 힘을 빌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다. 독일 특수부대와 몇 대의 루프트바페 폭격기가 지원에 나섰지만, 포위된 영국 기지에 대한 몇 차례의 무의미한 작전을 마친 뒤 연료가 바닥나 버렸다(『히틀러의 처형자들』, 341쪽).

곧 소련 침공을 준비하던 제3제국의 개입은 미미했다. 결국 영국군은 봉기를 별 어려움 없이 진압했다. 반란 세력이 남긴 것은 무장 해제된 채 약 200명, 대부분 유대인을 냉혹하게 살해한 사실뿐이었다.

히틀러와의 회담

나치의 구체적인 지원 없이는 싸움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무프티는 직접 히틀러에게 연락하기로 한다. 그는 여장을 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거기서 다시 독일로 향했다.

1941년 11월, 퓌러는 그를 오랜 시간 접견하며 장차 자신의 군대가 반드시 중동에 도달할 것이며, 그때 "독일의 유일한 목표는 아랍 땅에 살며 영국 통치의 보호를 받는 유대인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확약했다(343쪽).

이 말을 들은 알후세이니는 온 힘을 다해 무슬림들에게 나치즘 지지를 설득하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주로 그의 노력 덕분에 무려 2만 명의 이슬람 신도가 보스니아 무장친위대(Waffen-SS) 부대에 입대했다. 무프티 자신의 계획도 분명했다. 이번에는 중동 전역에서 대규모로 봉기를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베를린에서 진행한 설교에서 그는 "유대인의 영향력이 각 민족을 선동해 파멸적인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345쪽).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렇게 외쳤다. "오늘날 세계 유대주의는 예언자의 시절처럼 연합군을 도덕적 타락과 파멸의 심연으로 이끌고 있다"(350쪽).

나치 지하드: 히틀러는 이슬람의 힘을 빌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중동 공략이라는 대안 전략

무프티의 계획은 광범위했다. 그는 나치에게 북아프리카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을 촉구하며,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야말로 대반란의 전초기지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아랍 부대를 전투 부대로 창설하고 무장시켜야 한다. 그들은 이집트와 다른 아랍 국가로 진격해 적을 교란하고 괴롭히고 (...) 국내 봉기를 지원할 것이다 (...). 이집트 후방, 그다음 팔레스타인·시리아·이라크로 무기를 보내 봉기의 토대를 마련하라"(348쪽).

그러나 퓌러는 중동 전선의 결정적 중요성을 믿지 않았다. 아라비아 반도와 팔레스타인의 유전 지대를 전력으로 타격하는 대신 소련에 대한 공세를 선택했다. 『히틀러의 처형자들』의 저자는 만약 그가 무프티의 조언을 따랐다면 승리는 완벽했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나치 지하드: 히틀러는 이슬람의 힘을 빌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독일 국방군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 주둔하던 무장이 빈약하게 약화된 영국군을 손쉽게 분쇄할 수 있었다. 하이드리히의 특별작전부대는 텔아비브와 팔레스타인에서 대학살을 벌였을 것이고, 루프트바페는 영국 수비대를 습격해 영국령 인도 국경까지 모조리 쓸어버렸을 것이다"(337쪽).

이렇게 되면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에 살던 50만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죽기 하루 전날까지도 '나치 지하드'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이 북아프리카에 만든 강제수용소는 단 하나, 연합군이 롬멜을 리비아에서 몰아내기 직전 튀니스 근교에 세운 곳이 전부였다.

출처

  • 크리스토퍼 헤일, 『히틀러의 처형자들: 유럽의 더러운 비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