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38년째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그리스 '브라디니' 신문 발행인 조르지스 아타나시아디스 살인 사건

1983년 3월 19일, 그리스 유력 일간지 '브라디니(Vradini)'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인 조르지스 아타나시아디스(Tzortzis Athanasiadis)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무려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그리스 언론 역사상 가장 어두운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론계와 정치권을 아우른 절대 권력자

아타나시아디스는 단순한 언론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출판업자이자 사업가로서 '브라디니'와 '나우템포리키(Nautemporiki)' 두 신문의 발행인 겸 최대 주주였습니다. 당시 총리이자 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Constantinos Karamanlis)의 절친이자 핵심 협력자였으며, 그리스 최대 복권 기업 OPAP의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 회장, 아테네 일간신문 발행인 협회 회장까지 역임하며 언론·정치·경제계를 망라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사건의 밤, 세 발의 총성

1983년 3월 19일 토요일 밤, 아타나시아디스는 브라디니 신문사 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남자가 쏜 세 발의 총알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해 직후 한 여성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반군사투쟁(Anti-Military Struggle)' 조직이 이번 살인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녀는 스타디우(Stadiou) 거리와 아이올루(Aiolou) 거리 교차점에 조직의 성명서가 놓여 있다고 알려주었고, 실제로 그곳에서 성명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의외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실제로 존재하던 조직은 이름이 비슷한 '반징병투쟁(Anti-Conscript Struggle)'으로, 징병제 반대 운동을 평화롭게 전개하던 단체였습니다. 해당 조직은 살인 사건 연루를 강력히 부인했고, 구성원들을 상대로 한 어떠한 증거도 끝내 확보되지 못했습니다.

난무하는 추측과 음모론

사건 이후 각종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을 진 탓에 범죄 조직의 손에 죽었다는 설, 정치권에 혼란을 일으키려던 그리스 혹은 외국 정보기관의 소행이라는 음모설까지, 추측은 분분했지만 결정적인 실마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KYP 요원 체포, 그리고 또 다른 미궁

1985년 9월, 아티카 보안국은 그리스 중앙정보국(KYP) 소속 요원 다노스 크리스탈리스(Danos Krystallis)를 체포했습니다. 그는 당시 KYP 보안국장이었던 이오안니스 알렉사키스(Ioannis Alexakis) 대령의 직접적인 관리 하에 활동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크리스탈리스의 집에서는 '반군사투쟁' 조직의 미공개 성명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KYP의 명령에 따라 테러 조직에 잠입한 '침투 요원'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성명서들이 손에 들어왔다고 진술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크리스탈리스가 아타나시아디스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범은 검거되지 못했으며, 이 살인 사건은 그리스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