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숭배, 베스타
베스타 여신 숭배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숭배 중 하나로, 도시의 건국보다 앞선 시절부터 존재했으며 로마 기원 신화 중 하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전통에 따르면 로물루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알발롱가의 베스타 무녀였다. 또한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에 따르면, 누마 왕이 정립한 로마의 베스타 여신 숭배는 알발롱가의 숭배에서 직접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성스러운 처녀'로 일컬어진 베스타 무녀 가운데 한 사람이 두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은 처녀라는 설정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신화의 차원에서는 이런 요소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톨릭 역시 처녀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이야기한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순결을 저버린 무녀의 최후
로마의 베스타 숭배 규정에 따르면, 정조를 잃었거나 여신의 성스러운 불꽃을 꺼뜨린 무녀는 채찍질을 당한 뒤 상복을 입고 시체처럼 닫힌 가마에 실렸다. 그녀는 퀴리날레 언덕 콜리나 문 안쪽의 캠푸스 스켈레라투스(Campus Sceleratus)로 옮겨져 사실상 산 채로 매장되었다. 무녀는 빵, 물, 기름, 우유가 준비된 무덤 안으로 들어갔지만, 입구가 벽으로 막혀 있어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공평하게도, 무녀와 함께한 남자, 즉 간통죄의 공범은 노예형 또는 채찍질로 죽음에 이르는 형벌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알발롱가의 숭배에서도 같은 형벌이 베스탈리스에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론상 레아 실비아가 도망치지 못했고 아이들을 늑대(루파)에게 맡기지 않았다면 받았을 형벌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로마의 모든 '재탄생'과 함께한 베스타
이 숭배에서 진짜 흥미로운 점은 로마의 모든 '재탄생' 때마다 그 흔적이 울려 퍼진다는 사실이다.
로마는 기원에 관한 신화가 너무나 많은 특별한 도시이자, 수차례 재탄생을 거듭한 도시다. 첫 번째 로마는 왕정이었고, 두 번째 로마는 공화정, 세 번째 로마는 제정이었다. 로마가 재탄생하고 재편될 때마다 이전 세계의 한 조각과 새로운 기원 신화를 함께 안고 왔는데, 거의 우연처럼 매번 새로운 로마의 기원은 베스타 숭배와 연결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한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는 베스타 무녀의 아들이었다. 로마의 왕들이 축출되고 공화정이 선포되었을 때,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몰아내고 공화정의 토대를 놓은 인물들은 베스타 여신을 숭배했다. 여신은 오랫동안 공화정과 로마 선거인들의 수호자였으며, 그 흔적은 1세기의 일부 주화에서도 확인된다. 동전의 한쪽 면에는 베스타 무녀가, 다른 면에는 투표 행위를 하는 로마 선거인이 새겨져 있었다.
두 사례가 우연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해도, 제정의 탄생과 함께 우연은 세 번째로 반복되고, 이제는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장, 베스타 무녀의 손에
그렇다. 제정의 탄생과 함께 베스타 여신 숭배는 다시금 기원 이야기의 신화 속에 등장한다. 전통에 따르면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서거를 몇 달 앞두고 유언장과 함께 두 개의 두루마리를 작성해 봉인한 뒤 베스타 무녀들에게 맡겼다.
사소한 일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두루마리는 사실상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자서전이자 업적록인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업적(Res Gestae Divi Augusti)'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서, 즉 유언장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보물, 영지, 칭호, 권력을 티베리우스에게 물려주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로 불리는 긴 황제 계승의 막을 공식적으로 열었다.
레아 실비아에서 성모 마리아로
베스타 숭배는 고대 로마 시대에 세 차례 로마의 탄생을 함께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아 실비아와 성모 마리아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세계(그 모든 변천 과정을 포함해), 특히 중세와 근대에 나타난 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은 이슬람 세계의 그것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이슬람이 기독교에서 파생되었고,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또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마리아 숭배가 역사적으로 '두 번째 로마'로 불린 콘스탄티노플에서 탄생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이는 분명 추측의 영역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 숭배와 로마의 베스타 여신 숭배 사이의 상징적 연결고리를 감안한다면, 로마가 어떻게 '새롭게 태어난' 베스타 신화의 귀환을 목격했는지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먼저 비잔틴 제국이 마리아 숭배를 제도화했고, 이어서 로마가 교황권의 특권적 소재지로 지정되었다. 전통에 따르면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회에 유증한 것이었다. 그 유증이 훗날 위조된 역사 문서로 판명되었음에도, 이 대목은 아우구스투스가 베스타 무녀들에게 맡긴 유언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