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물건입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새해 달력을 미리 구하느라 분주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물건 뒤에는 놀랄 만큼 길고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달력의 주요 변천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로마의 달력
고대 로마 최초의 달력은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자 로물루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당시 기록은 상당히 불분명하고, 서로 모순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시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한 해는 3월에 시작하는 10개월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반면 일부 역사가들은 이미 1월과 2월이 존재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로마의 두 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달력은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가 비교적 자세히 전해 줍니다. 이는 한 달이 29일에서 31일 사이인 12개월짜리 태음태양력으로, 한 해는 총 355일이었습니다.
달력 연도와 계절 사이의 약 10일 차이를 메우기 위해 2년마다 22일 또는 23일 길이의 '메르케도니오(삽입월)'를 추가했습니다. 이 달력은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기원전 46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율리우스력
공화정 시대 내내 사용된 누마의 달력은 이를 관리하던 사제들의 방만한 운영 탓에 계절의 흐름보다 약 석 달이나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름이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가을철인 10월과 11월의 날씨를 맞이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달력을 도입했는데, 바로 그의 이름을 딴 율리우스력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천문학자 소시게네스가 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율리우스력이 시행된 기원전 46년(또는 45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전통적인 월과 계절을 다시 일치시키기 위해 11월과 12월 사이에 두 개의 추가 월을 삽입하고, 메르케도니오도 한 번 더 넣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그해는 거의 확실하게 445일이었습니다.
이후 소시게네스는 매년 365일, 그리고 4년마다 한 번씩 윤년을 두는 방식을 확립했습니다.
그레고리력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은 1582년 10월 4일 공식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실제로 1582년은 평년보다 열흘이나 짧은 해였습니다.
이 결정은 율리우스력과의 어긋남을 해소하고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내리고 실행한 것입니다. 당시 달력 연도가 실제 계절보다 뒤처져 있었고, 이 격차를 만회해야 했죠.
약 4년에 걸친 작업 끝에 의사 루이지 릴리오와 천문학자 크리스토포로 클라비오가 주도한 개혁안이 담긴 교황 칙서 인터 그라비시마스(Inter gravissimas)가 반포되며 그레고리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레고리력은 기본적으로 율리우스력과 같지만, 100년 단위의 해 중 400의 배수가 아닌 해는 윤년에서 제외한 점이 다릅니다. 이를 통해 수세기 동안 방치됐던 하루 5시간 48분 46초의 오차를 회수하고, 이후에 생길 수 있는 계절의 밀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날짜는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날'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해 10월 4일 밤 잠든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10월 15일이 되어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