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의 만병통치약? 뱀, 두꺼비, 개구리로 만든 '기적의 약'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병든 몸으로 교황의 의사를 찾으라는 권유를 받자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진다. "주님은 흙으로 약을 만드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경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상에 따라 폴란드 출신 수사 미코와이(Mikołaj)는 하늘이나 환자의 기분이 아니라 신의 창조물 속에서 치료제를 찾았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약은 혐오스러울수록 효험이 컸다.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던 중세의 대체의학

환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역겨워 보이는 중세의 대체의학이었지만, 성직자 계층 안에도 확고한 지지자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도미니코회 수사 니콜라스 오브 폴란드(Nicholas of Poland), 즉 폴란드의 미코와이였다.

그는 갈레노스와 그의 체액 이론을 조롱했고, 값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이국적인 재료로 만든 약품을 쓰는 의사들을 돌팔이이자 사기꾼으로 여겼다. 그는 자연의학으로의 전환(morbum natura sanat, media sine cura)을 주창했으며, 지구 위를 걷고 기어오르고 뛰어다니는 가장 지저분하고 역겨운 생물들에게 비범한 치유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 안에 치유력을 숨겨두었고, 생물이 흉측하고 더럽고 흔할수록 기적적인 효능도 커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뱀, 도마뱀, 개구리 먹기를 가르친 수도사

1278년 트라스카 연대기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설교자회[도미니코회] 소속의 미코와이라는 이름의 한 수사가 나타나" 도미니코회 형제들, 그리고 이후 레시크 흑공(Leszek Czarny)을 설득해, 겉보기엔 그다지 탐스럽지 않지만 매우 건강에 좋다고 여겨지는 요리를 일상 식단에 추가하도록 했다.

중세의 만병통치약? 뱀, 두꺼비, 개구리로 만든  기적의 약

미코와이의 권유에 따라 레시크 2세와 아내 그리피나는 뱀, 도마뱀, 개구리를 먹기 시작했다.

연대기에 따르면 미코와이는 "모든 병에 대해 뱀, 도마뱀, 개구리를 먹도록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시에라츠 공작 레시크[흑공]와 그의 아내 그리피나는 그 수사의 권고에 따라 뱀, 도마뱀, 개구리를 먹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온 백성이 그들을 경멸했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중세 사람들은 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뱀은 사탄, 지옥, 죄, 죽음의 상징이었다. 마야 이바슈키에비치는 저서 『최후의 심판에 놓인 돼지 – 중세에 동물은 어떻게 인식되었는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각종 뱀류는 성경 덕분에 중세에서 당연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녔다. 낙원에서 이브를 유혹한 단 한 마리 뱀이 자기 종족 모두의 밝은 미래를 망쳐버렸으니까."

난산에는 말린 두꺼비

미코와이는 하나님께 헌신된 인물로,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저서 『안티포크라스(Antipocras)』에서 "나는 치료할 때 하늘과 하늘의 별들에 호소한다"라고 썼고, 이어서 "[...] 어떤 불평도 듣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사물 안에 잠재해 기적을 일으키고 요소들조차 굴복시키는 많은 불가사의를 가능케 하는 힘들을 생각하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미코와이의 또 다른 저서 『엑스페리멘타(Experimenta)』를 들여다보자. 이 책에서 그는 각종 질환에 대한 즉석 '처방전'을 제시하는데, 파충류 가루 처방은 다음과 같다.

"두꺼비 세 마리 내지 네 마리를 새 항아리에 넣고 김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진흙으로 뚜껑을 덮는다. 그다음 두꺼비가 타지 않고 마르기만 할 정도까지 화롯가에 놓는다. 항아리를 흔들었을 때 나는 소리로 충분히 말라 갈 수 있을 만큼 잘 마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다음 항아리에서 꺼낸다."
중세의 만병통치약? 뱀, 두꺼비, 개구리로 만든  기적의 약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면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서 완전히 말린 뒤 절구에 곱게 빻는다. 그다음 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잘 밀봉된 유리 용기에 보관한다. 같은 방법으로 뱀과 전갈 가루도 만든다."

이 가루는 상처에 발랐는데, 상처가 워낙 잘 아물어 중상을 입고도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고 한다. "상처, 궤양, 모든 질환"에 효과가 있었고, 아픈 이빨에도 좋았다(가루, 되도록 뱀으로 만든 것을 아픈 부위에 넣어야 했다). 난산에도 도움이 되었다("이 가루를 맨배에 묶어 붙이면 순식간에 해산한다"). 게다가 환자를 먼저 세척해 주기만 하면 "누공(廔管)"에도 효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세판 면역 영양제

니콜라스의 또 다른 처방은 "나무에서 우는 풀개구리"로 만든 알약으로, 꽤 소름 돋는 방식으로 제조되었다. 이 알약은 병을 땀으로 몰아내는 데 탁월했고, 간과 신장의 경화, "심장 경련과 마비", 눈 질환 치료에도 좋았다. 게다가 예방적으로 복용하면(미코와이는 일 년에 열 번 복용을 권했다) 어떤 병으로부터도 몸을 지켜준다고 했으니, 개구리 알약은 어쩌면 역사상 최초의 중세 면역 영양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널리 쓰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바슈키에비치는 중세에 개구리는 악, 죄, 역병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죄 많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믿어졌기에 분명히 역겨움의 대상이었다고 적는다. 그러면서 13세기 베스티아리(동물지)를 인용해, 중세에 순수함과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의 상징이던 사슴이 '파충류 식단'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다고 소개한다.

"사슴은 병의 징후를 느끼는 즉시 콧김으로 뱀을 굴에서 꾀어내고, 해로운 독을 이긴 뒤 그것을 먹고 나아진다."
중세의 만병통치약? 뱀, 두꺼비, 개구리로 만든  기적의 약

일부 중세 의사들은 생물이 흉측할수록 약의 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여겼다.

폴란드의 미코와이도 아마 이 관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먹거리와 약용 가루 외에도 버터로 만든 뱀 연고(류머티즘과 마비에 좋고 용도가 사실상 무궁무진했다)와 콧물, 치질을 낫게 하는 기름까지 권했다.

미코와이 수사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구할 수 있을 때마다 뱀을 먹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대로 조리된 뱀 고기를 국왕, 공작, 귀족들이 매일 먹도록 권했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적당한 뱀을 잡거나 살 수 있다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뱀 고기는 나병, 간질, 실명, 청각 장애로부터 몸을 지켜준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그는 "뱀 고기는 어떤 약보다도 젊음과 좋은 안색을 오래 유지해 준다"고 강조했다. 『최후의 심판에 놓인 돼지』의 저자가 기술한 사슴은 중세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사슴은 뱀을 먹은 뒤 샘으로 달려가 물을 마시면, 모든 흰머리와 노화의 다른 징후가 사라진다." 5백 년이 지난 지금, 집 약장에서 파충류·양서류 연고나 가루를 찾기는 어렵지만, 뱀독과 샘물이 첨가된 화장품은 여전히 젊고 건강한 피부를 가꾸고 싶은 많은 여성들의 필수템으로 남아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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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Skulimowscy A., Skulimowski M.,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초 대폴란드 공작가의 시의(侍醫) 마기스테르 미코와이', "Archives of the History of Medicine" 1958년, 제2호, 285~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