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10월, 한 척의 독일 잠수함이 미국 뉴포트(Newport) 해군기지에 입항했다. 함장 한스 로제(Hans Rose) 대위는 예의 방문차 미국 제독을 알현했고, 이어서 미 해군 장교단을 함내에 초대해 접대까지 했다. 그리고 그다음… 그는 미국 구축함들의 포탑 앞에서, 아니 바로 눈앞에서 배들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봉쇄선 돌파
1916년 7월 하순, 독일 잠수함 '도이칠란트(Deutschland)'호가 아직 중립국이던 미국의 볼티모어항에 도착했다. 이 배는 귀중한 전략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신형 선박이었다. 연합국의 해상 봉쇄 때문에 이런 방식의 수송이 불가피했다. 현지 독일인들은 이 잠수함을 열렬히 환영했고, 워싱턴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독일 선원들은 당시 해군 차관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8월 말, 도이칠란트호는 고무, 니켈, 주석, 황마를 가득 실은 채 연합국의 봉쇄선을 뚫고 무사히 독일로 귀환했다. 이 항해는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영국에서는 분노와 경악을 자아냈다.
뉴런던 항 체류 당시 촬영된 잠수함 '도이칠란트'호(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이 성공에 고무된 독일은 곧바로 두 번째 수송 잠수함 '브레멘(Bremen)'호를 대서양 건너로 파견하기로 했다. 이 배를 호위하는 임무는 한스 로제 대위가 지휘하는 최신형 원양 잠수함 U-53에게 맡겨졌다.
로제에게는 추가 임무도 주어졌다. 그의 함정은 미국 항구에 입항한 뒤, 미국 연안에서 적국 선박과 교전해야 했다. 군사적 목적만이 아니라 선전 작전이기도 했다. 세계에 잠수함 부대(U-Bootwaffe)의 위력과 독일의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브레멘호는 끝내 미국 항구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마 오크니 제도 근해에서 기뢰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로제의 함정은 홀로 항해를 계속해야 했다.
한스 로제 대위(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신문 하나 사 온 사이
1916년 10월 7일 오후 3시, U-53은 뉴포트에 정박했다. 독일 잠수함의 등장은 현지 주민들과 기지 인력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예장을 갖춘 로제는 뉴포트 소재 구축함 전대 사령관 나이트(Knight) 제독을 예방했다.
그런 다음, 로버트 K. 매시(Robert K. Massie)가 저서 『강철 요새』 3권에서 기술한 대로, 독일 함장은 독일 대사에게 서한을 보내고, 출항 예정 선박과 목적지 항구가 적힌 현지 신문을 샀다.
곧이어 U-53에는 나이트 제독의 회답 방문단이 찾았다. 제독을 따른 장교들과 그들의 부인들, 현지 언론 관계자, 초대받은 뉴포트 시민들이 함께였다.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인들은 독일인들을 경계했고, 위생 검역을 명분으로 배의 출항을 막으려 했다.
뉴포트 체류 당시 촬영된 U-53(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미국인들의 태도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U-20이 여객선 '루시타니아(Lusitania)'호를 어뢰로 격침한 비극이 아직 생생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미국 시민도 있었다. 이 참사로 미국과 독일 제국 간의 외교 관계는 크게 냉각되었다.
낙원에서 벌어진 지옥
그래서인지 로제는 국제법상 중립 항구에서 24시간 머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5시 30분에 출항을 명령했다. U-53은 어스름해지는 밤바다로 나아갔다. 곧 드러나겠지만, 신문에 실린 정보는 독일 함장에게 허풍 없이 큰 도움이 되었다.
10월 8일, 새벽이 밝아올 때 U-53은 낸터킷(Nantucket) 등대 곁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윽고 미국의 평화롭고 안전한 연안 근처에서 수송선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오전 7시경, 미국 선박 '캔자스(Kansas)'호가 처음으로 나포되었다. 선체 검사와 국적 확인 후 석방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일곱 척의 수송선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영국 선박 다섯 척, 네덜란드 선박 한 척, 노르웨이 선박 한 척이 해저로 가라앉았다. 다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로제 대위는 국제 해사법을 엄격히 준수하며 작전을 수행했다. 어뢰 발사 전에 독일 잠수함은 승조원들이 구명보트로 대피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덕분에 희생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비켜라, 판!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무려 경보를 받고 출동한 미 해군 구축함 16척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졌다! 앞서 언급한 로버트 K. 매시가 강조했듯이:
한때 U-53은 미국 함정에 너무 가까이 접근해서 충돌을 피하려고 엔진을 멈춰야 할 정도였다. 같은 날, 버려진 네덜란드 선박 근처에 정지해 있던 또 다른 구축함에게 로제는 자신이 배를 자유롭게 어뢰로 격침시킬 수 있도록 위치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구축함은 순순히 물러섰고, U-53은 어뢰 2발을 발사해 화물선을 해저로 보냈다.
U-53 승조원들. 가운데 한스 로제 대위(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기록적인 순항
마침내 로제 대위는 임무 종료를 강요당했다. 함에 실은 어뢰가 모두 떨어진 것이다. 10월 28일, U-53은 헬골란트(Helgoland) 기지에 정박했다. 자신의 행보로 인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폭풍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함정들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국 선박이 침몰하는 것을 지켜본 영국인들은 분노했고, 영국 하원은 격분했다.
미국 국무부는 특별히 소집된 기자회견에서 해군의 소극적 태도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U-53이 미국 영해 밖에 있는 한, 미 해군 구축함은 개입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도 독일인이 미국인을 조롱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U-53 승조원들의 또 다른 사진(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U-53의 이번 순항은 한 가지 더 이유로 역사에 남았다. 바로 잠수함 최초의 원양 전투 항해였다는 점이다. U보트는 급유 없이 총 7,550해리를 항해했다. 해상에서 41일 8시간을 보냈는데, 이 중 항구에 머문 시간은 겨우 2시간 30분이었다. 잠수함은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고,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몇 번이고 그 능력을 증명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