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역사의 한 조각(Pills of History)'에 게재된 글로, 독특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과 페라리 사이에 과연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그 답을 확인하려면 끝까지 읽어보세요!
▲ 페라리의 상징, 도약하는 말(프랜징 호스)
라이트 형제와 현대 비행기의 원형
▲ 라이트 형제의 첫 공개 비행
무대는 미국. 발명품과 사회·경제적 격변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며 인류의 미래를 영원히 바꿔놓을 '포효하는 20세기'가 막 열리던 시기였습니다.
유럽 밖의 배경이지만, 이 시기는 이른바 벨 에포크(Belle Époque), 그러니까 전례 없는 규모의 세계 대전이 터지기 직전의 화려한 시대였습니다.
주인공은 당시 작은 가게에서 자전거 수리업을 하던 라이트 형제, 즉 형인 윌버와 동생 오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앞으로 이룰 위업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왜 온 하늘이 열려 있는데도 굳이 바퀴 달린 이동수단에만 만족해야 했을까요?
부피가 큰 활공기로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한 끝에, 1903년 두 형제는 마침내 '플라이어(Flyer)'라 불리는 독특한 장치로 짧은 비행에 성공합니다. 오늘날 광고 전단지를 뜻하는 '플라이어'와 같은 이름이지만, 이 모든 일이 한 세기도 더 전에 일어났다는 점을 기억해 둡시다.
비행 거리는 몇 미터, 체공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시적인 엔진의 힘으로 사람이 탑승한 물체가 스스로 하늘을 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혁명적인 발견이었고, 인간이 구름 위로, 나아가 별들까지도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발명은 훨씬 덜 평화로운 목적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말, 드디어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발발합니다.
진흙과 피의 지옥이 된 이 전쟁은 민간인을 포함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삼켰습니다.
비행기 역시 군사적 목적으로 동원되었습니다.
솜 전투에서 전차가 철조망과 참호 사이를 가르며 진격했다면, 그보다 먼저 하늘에는 최초의 전투기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적군 부대와 참호 배치를 촬영하고 주변 지역을 정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곧 폭탄과 기관총을 장착하게 됩니다.
또한 독일군은 이른바 '동조 장치(동기화 장치)'를 발명해, 조종사가 복잡한 조작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프로펠러 날개 사이로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한 '에이스(Ace)'들이 등장하며 비행의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페라리와 도약하는 말
▲ 젊은 시절의 엔초 페라리
유명한 '붉은 남작(레드 바론)'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외에도, 이탈리아에는 종군 내내 34대의 적기를 격추한 프란체스코 바라카가 있었습니다.
30세의 나이로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 젊은 비행사는, 자신의 기체에 자랑스럽게 새긴 흰 바탕 위의 도약하는 말로 유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라카 가문의 문장이었고, 이 말은 이후 하늘이 아닌 서킷 위를 질주하게 됩니다.
1923년, 젊은 엔초 페라리는 바라카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의 상징을 자신의 레이싱카에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습니다.
모데나를 기리기 위해 노란색으로 바뀐 도약하는 말은 이후 알파 로메오 8C 2300에 등장했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페라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진 출처: it.blastingnews.com, italian.tech, montbla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