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평생의 원수,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 갈리아 부족을 하나로 묶어 로마에 맞선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잊곤 합니다. 지금부터 2000여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장 유명한 갈리아 지도자가 맞이한 은밀하고도 비극적인 최후를 살펴보겠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넘어간 베르킨게토릭스
베르킨게토릭스는 누구인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름 중 하나인 베르킨게토릭스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원전 82년경 아르베른(Arverni) 영토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동안 각 갈리아 부족을 규합하는 데 힘썼습니다. 로마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였죠. 마침내 군대를 소집하는 데 성공한 그는, 당시 로마의 정치·군사적 실권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단에 맞설 군대의 선봉에 섭니다.

알레시아 공성전
베르킨게토릭스는 치열하고 무엇보다 민첩한 적인 로마군에 맞선 갈리아 민족의 통합자로 평가받습니다. 권력과 정복을 향한 야망을 품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맞서 그는 수많은 병력을 모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벌이던 두 지도자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다고 전해집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여러 전투를 지휘했고, 그중 일부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특히 유명한 게르고비(Gergovia) 전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성공이 그의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연전연승에 힘입어 갈리아인들은 로마군에 대한 결정적 반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평생의 적을 완전히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갈리아군은 알레시아(Alésia) 성벽 밖에서 카이사르의 군대를 기습 공격했지만, 교활한 카이사르는 남다른 군사적 재능을 발휘해 갈리아 전역에 병력을 체계적으로 배치합니다. 조직력 부족으로 갈리아군은 큰 손실을 입었고, 베르킨게토릭스에게 선택지는 좁아졌습니다.
결국 갈리아의 지도자는 알레시아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종말을 예고하는 서명과 다름없었습니다. 알레시아 포위를 결심한 카이사르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두 숙적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무려 40일간의 포위전이 이어졌습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백성들을 구원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했지만, 갈리아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손실이 이어졌습니다. 성 안에서는 구원군을 기다리며 버티기 위해 모든 것이 동원되었습니다. 밀을 징발하고,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정도였습니다.
구원군은 좀처럼 도착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카이사르는 승리에, 베르킨게토릭스는 죽음에 가까워졌습니다. 며칠간의 대기 끝에 마침내 군사 지원군이 도착하며 갈리아인들은 일순 안도했지만, 불행히도 그 군대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갈리아인의 돌파 시도와 로마군의 추격이 이어진 마지막 기회의 전투는 사실상 학살로 끝났습니다.
다음 날, 갈리아 지도자는 회의를 소집하고 항복을 결정합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죽음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승리한 것입니다.

죽음 전, 트로피처럼 전시된 갈리아의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가 카이사르에게 넘겨진 장면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본인의 기록을 통해 전해집니다. 물론 저자가 자신의 승리를 미화하기 위해 다소 과장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베르킨게토릭스가 자신의 무기를 발밑에 던져 넘겼다고 기술했는데, 이는 실제로 켈트족의 항복 관습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승전식을 치르고자 했습니다. 그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를 살려둘 계획이었을까요? 그의 진의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는 우선 알레시아의 포로들을 병사들에게 노예로 분배했습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경우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로마로 호송되어 마치 전리품처럼 대중 앞에 전시되었습니다. 이는 성공적인 군사 작전 이후 흔히 행해지던 관행이었습니다. 패배한 적이 강건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드러날 때 승리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인식 때문에, 전시 기간 동안 그가 학대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이사르에 의해 투옥된 베르킨게토릭스
패배하여 로마인들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진 뒤,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의 오래된 감옥인 툴리아눔(Tullianum)에 수감된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죽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위대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그늘 아래 수년간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 카이사르는 전권을 쥔 상태였고, 평생의 숙적은 옥고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갈리아 족장의 위협 아래 살 필요가 없었죠.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단순히 적을 가두어 두는 데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베르킨게토릭스의 죽음을 바랐을까요?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사실은 단 하나, 베르킨게토릭스가 투옥된 지 6년 후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의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혹독한 수감 환경 탓이었을까요? 복수심에 불타올랐던 병사들의 손에 죽었을까요? 아니면 경쟁자를 영원히 제거하기 위해 카이사르가 직접 사형을 명령했을까요? 미스터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미스터리가, 로마 최강의 권력자의 원수가 된 위대한 전사 베르킨게토릭스에 대한 우리의 매력을 한층 짙게 만듭니다.
출처:
– Jean Markale, 「Vercingetorix」, Editions de Crémi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