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스 휘틀리(Phillis Wheatley, 약 1753~1784)는 시집을 출간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인입니다.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지만, 뛰어난 언어 감각과 시적 재능으로 미국과 영국 양쪽 사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래에서 그녀의 인생을 바꾼 주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살펴봅니다.
필리스 휘틀리의 생애 연표
약 1753년 – 서아프리카 출생
현재의 세네갈·감비아 지역으로 추정되는 서아프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1761년 – 납치와 노예 생활의 시작
7세 무렵 납치되어 노예선 '필리스(Phillis)'호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북미에 도착했습니다. 보스턴의 부유한 상인 존 휘틀리(John Wheatley) 가문에게 팔렸으며, 배의 이름을 따 '필리스'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1762년 전후 – 읽기와 쓰기를 배우다
휘틀리 가문, 특히 딸 메리(Mary Wheatley)의 가르침 아래 영어를 놀랍도록 빠르게 습득했고, 이후 라틴어와 그리스어까지 익히며 성경과 고전 문학을 폭넓게 섭렵했습니다.
1767년 – 첫 시 발표
10대 초반에 신문 '뉴포트 머큐리(Newport Mercury)'에 시가 실리며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770년 – 일약 유명해지다
유명 설교자 조지 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가 발표되어 대서양 양쪽에서 널리 회자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1773년 – 영국 방문과 첫 시집 출간
주인 가문의 아들과 함께 영국을 방문하여 저명한 폐지론자들과 후원자들을 만났고, 런던 상류 사회에서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9월 첫 시집 『종교적·도덕적 주제에 관한 시(Poems on Various Subjects, Religious and Moral)』를 출간하여, 시집을 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774년 – 자유의 몸이 되다
후견인이었던 수잔나 휘틀리(Susanna Wheatley)가 세상을 떠난 뒤 공식적으로 해방되어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1775년 – 조지 워싱턴에 헌시
보스턴으로 돌아온 뒤에도 시 창작을 계속했으며, 독립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게 시를 보내 그의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1778년 – 존 피터스와 결혼
자유 흑인 남성 존 피터스(John Peters)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불안정하게 이어졌고, 슬하에 낳은 세 아이는 모두 요절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784년 – 빈곤 속에 요절
남편 피터스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뒤 사망하자, 필리스는 가난과 질병 속에서 하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같은 해 12월 5일, 31세의 나이로 보스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필리스 휘틀리가 남긴 의미
필리스 휘틀리는 노예 신분으로 살았던 시대에 뛰어난 문학적 업적을 이루며, 흑인의 지적 능력에 대한 당대의 편견에 맞선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짧지만 강렬한 삶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문학사와 노예제 폐지 운동의 역사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