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Francisco Vázquez de Coronado)는 1540년부터 1542년까지 황금과 전설 속 '황금 7도시'를 찾아 거대한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본래의 목표였던 금광과 황금 도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도가 스페인으로 돌아왔을 때 받은 대우는 의외로 따뜻했습니다. 실패한 탐험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왕실은 그를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았고, 그는 이후 왕립 인도 평의회(Council of the Indies) 위원으로 임명되기까지 했습니다.
따뜻한 환영을 받은 이유
코로나도가 처벌 대신 예우를 받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의 원정이 지리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 그의 탐사대는 오늘날의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캔자스 등 현대 미국 남서부의 광대한 지역을 유럽인으로서 최초로 탐사하고 기록했습니다.
- 1541년에는 그랜드캐니언을 목격한 최초의 유럽인 탐사대가 되었습니다.
- 미국 남서부 내륙의 지형과 토착 민족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모아 스페인에 전달했습니다.
즉, 스페인 왕실의 관점에서 이 원정은 '황금을 찾지 못한 실패'였지만, 동시에 '북미 내륙을 개척한 위대한 지리학적 성취'로 평가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실패 이후의 삶
물론 비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인 원정이 허탈하게 끝나면서 그는 누에바 갈리시아 총독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본국에서는 그의 탐사 공로가 인정되어 요직에 기용되었고, 1554년 멕시코시티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안정적인 말년을 보냈습니다.
결국 코로나도의 사례는 '보물 발견의 실패'가 곧 '업적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탐사 기록은 이후 북미 대륙 개척의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