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보스턴 가제트 기사로 보는 보스턴 학살 사건: 군중은 왜 모였을까?

보스턴 가제트가 전하는 보스턴 학살 사건의 배경

1770년 3월 5일 밤, 보스턴에서 영국군 병사들이 민간인들에게 발포해 다섯 명이 사망한 '보스턴 학살 사건'은 미국 독립 혁명의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당시 애국파 성향의 신문이었던 보스턴 가제트(Boston Gazette)는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는데, 그 기사에 따르면 군중은 대체로 왜 그 자리에 모였던 걸까요?

가제트 기사에 나타난 사건의 전개 과정

보스턴 가제트의 기사에 따르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되었습니다.

  • 영국군 병사 두 명이 동료들을 괴롭히거나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포위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영국군 병사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갔습니다.
  • 영국군의 증원 병력이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alarmed)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 주민들은 거리를 누비며(ranged the streets) 항의의 뜻을 표했습니다.
  • 이들은 곧 더 큰 규모의 영국군 순찰대와 마주쳤습니다.
  • 결국 군중은 병사들을 향해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고,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어 발포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군중은 왜 모였을까?

가제트의 기사를 종합해 보면, 군중이 모인 직접적인 계기는 동료 병사를 보호하겠다며 출동한 영국군 병사들의 무력 시위였습니다. 병사 한두 명과의 말다툼에서 시작된 갈등에 정식 부대가 증원으로 투입되자, 주민들은 이를 노골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또한 당시 보스턴에서는 1768년부터 영국군이 상시 주둔하면서 세금 문제, 일자리 갈등, 병사들의 비행 등으로 주민과 군대 사이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장한 병사들이 거리에 배치되자, 이미 불만을 품고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왔고, 항구적 반감을 바탕으로 한 항의 운집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입니다.

맺음말

보스턴 가제트의 보도는 군중이 우연히 운 좋게 모인 것이 아니라, 영국군의 증원과 위협적인 태도에 맞서 항의하기 위해 스스로 거리로 나왔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서술은 식민지 여론을 결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보스턴 학살 사건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1차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