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샴페인, 에피그램, 바게트? 나치 점령기 파리의 삶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프랑스 역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 시민들이 유례없는 희생을 겪었다고 전 세계에 설득하고 싶어 한다. 굶주리고, 약탈당하고, 인간의 존엄마저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동전의 한 면일 뿐이라면? 바르샤바에서 점령기를 보낸 폴란드인들은 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내 마음은 프랑스인이지만, 엉덩이는 국제적이야" — 나치 장교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혐의로 종전 후 1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배우 아를레티(Arletty)가 남긴 말이다. 전후 폴란드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이 문장이 점령기 파리의 분위기를 무엇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

타락한 자들의 승리

1940년 6월 22일, 콩피에뉴 숲 안의 열차 객차. 샤를 훈츠제(Charles Huntziger) 장군이 휴전 협정에 서명하면서, 히틀러가 당분간 무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프랑스는 두 부분으로 갈라졌다. 비시 괴뢰 정부가 통치하는 '자유 지역'과 독일이 직접 점령한 지역이 그것이다.

샴페인, 에피그램, 바게트? 나치 점령기 파리의 삶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파리는 히틀러의 눈엣가시였다. '순수한 독일 사상' 위에 군림하는 타락한 프랑스 문화의 지배는 조만간 끝나야 했다. 따라서 독일은 예술 분야의 유대인 영향력뿐 아니라 방종한 프랑스 패션과도 싸워야 했다. 물론 퓌러의 연인 에바 브라운조차 프랑스 패션에 푹 빠져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역에서 프랑스인들은 독일에 굴복하지 않았다. 모리스 슈발리에(Maurice Chevalier)가 말했듯이, "휴가를 나온 병사들이 파리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파리는 언제나 파리여야 한다."

죄의 도시

1940년 6월 14일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함락된 프랑스의 수도는 나치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첫 충격에서 벗어난 파리 시민들은 적군의 존재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다. 이 '타락한 도시'는 경직된 나치 독일에서 온 병사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누드였다!

샴페인, 에피그램, 바게트? 나치 점령기 파리의 삶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물랭루주 아래 어울린 독일인과 프랑스인 (사진: Heinz Boessig, Bundesarchiv 제공, 퍼블릭 도메인)

곧이어 나이트클럽, 카바레, 창관을 향한 독일인들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7월에는 백 개가 넘는 극장이 문을 열었고, 8월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이 재개관했다. 예르지 아이슬레르(Jerzy Eisler) 교수의 신랄한 평보다 이 상황을 잘 요약한 말은 없다. "독일 장교가 파리에 도착하면 그가 치러야 할 유일한 전투는 카페 자리를 잡기 위한 싸움이다."

폴란드의 관점에서 보면 파리의 '점령'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어색하게 들린다. 1940년 파리의 거리 풍경은 당시 바르샤바나 다른 폴란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나치의 의뢰를 받고 앙드레 주카(André Zucca)가 촬영한 약 7천 장의 사진 컬렉션이 이를 잘 증명한다.

최근 이 사진 가운데 270장만을 선보인 전시회가 센 강변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손님으로 가득 찬 술집,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여인들, 다정한 연인들. 이 선전용 사진들이 점령기를 분홍빛으로 칠하려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쓴소리를 하는 이들은, 작가가 특별히 애쓸 필요조차 없었다고 주장한다.

전쟁 속의 사치

전설적인 파리 리츠 호텔은 점령기에도 사치의 대명사였다. 호텔의 한 층 전체가 제3제국의 최고위 인물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을 위해 예약되어 있었다. 호텔 지하의 피난호는 동물 가죽으로 장식되고 실크 에르메스 침낭을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코코 샤넬이 벙커로 내려갈 때, 하인이 실크 베개 위에 올려놓은 방독면을 들고 따라갔다고 한다.

통금 시간(23시 시작)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밤문화는 번성했다. 에디트 피아프는 무대 위에서 독일인들을 매혹시켰고, 최고의 명소들은 메뉴를 독일어로 인쇄했다. 나치들은 대체로 프랑스에 우호적인 편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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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기의 전설적인 에디트 피아프 (사진: Eric Koch, 헤이그 국립문서보관소, CC BY-SA 3.0 nl 라이선스)

당연한 일이다. 파리는 국방군 병사들에게 지상의 점령 낙원이었으니까. 프랑스인들 역시 점령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얻을 수 있는 상당한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불법 샴페인 유통을 눈감아주는 것부터, 추가 식량 배급, 나아가 목숨을 건져주는 일까지 말이다.

자율 검열

파리 점령에 관한 가장 놀라운 수치 중 하나는 아마도 1940~1944년 사이 출판된 책의 양일 것이다. 무려 3만 3천 점에 달하는 저작이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다. 게다가 독일의 개입 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프랑스 출판사들은 인쇄물의 내용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협약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나치의 취향과 요구를 미리 헤아리며 일종의 금서 목록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샴페인, 에피그램, 바게트? 나치 점령기 파리의 삶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1941년의 파리 (사진: Langhaus, Bundesarchiv 제공, 퍼블릭 도메인)

프랑스에게 전쟁의 가장 어려운 결산은 아마도 지식인들의 태도에 대한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나치의 확고한 지지자들만이 자신의 전쟁 행위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받았고, 대다수는 협력에 따른 책임을 피해갔다. 공산주의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했던 사르트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말은 무척 역설적이다. "우리는 독일 점령 하에서 그토록 자유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벨디비(Vel'd'Hiv) 경기장

1942년 7월. 1만 3천 명이 넘는 유대인 여성, 남성, 아이들이 벨디비 경기장에 갇혔다. 이들 대부분은 악명 높은 드랑시(Drancy) 수용소를 비롯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또 하나의 나치 작전이 아니었다. 프랑스 장교들이 직접 계획하고 전적으로 실행한 작전이었다.

경기장 안의 상황은 참담했다. 위생 시설도, 깨끗한 물도, 음식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남기고 떠난 아파트와 재산은 순식간에 파리 시민들의 손에 넘어갔다. 배상 소송은 오늘날까지도 파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2년 뒤 같은 경기장은 독일과 협력한 혐의를 받는 약 3천 명의 수용 장소로 쓰였고, 이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드랑시 수용소행을 피하지 못했다.

시선 없는 도시

La ville sans regard — '시선 없는 도시'. 독일 병사들이 파리를 부르던 이름이다. 프랑스인들은 점령자를 못 본 척하는 것을 택했다. 평범한 일상의 외피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화려한 밤문화는 대다수 파리 시민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파리 역시 다른 전쟁 도시들처럼 굶주림, 추위, 가난과 씨름해야 했다.

샴페인, 에피그램, 바게트? 나치 점령기 파리의 삶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비시 정부 수반 피에르 라발(Pierre Laval)과 점령 프랑스의 SS·경찰 총책 카를 오베르크(Carl Oberg). 이 두 '신사'는 북프랑스 유대인 말살 등을 논의한 인물들이다 (사진: 퍼블릭 도메인)

이곳에서도 가혹한 식량과 연료 배급이 시행되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수도에서 시골 마을과 작은 도시로 보내졌다. 전쟁은 또한 남편, 아버지, 오빠의 도움 없이 홀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파리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자리는 점차 독일 병사들이 차지했고, 전후 이 여성들은 '침대 위의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잔혹한 복수를 당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

어느 정도까지는, 프랑스에서 역사와의 결산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앙리 루소(Henry Rousso)에 따르면, 전후 나치와의 협력 혐의로 약 4만 명이 수감되었고, 5만 명은 명예 박탈형을, 약 7천 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700명에 불과했다.

1951년과 1953년의 사면으로 인해 1960년에는 프랑스 감옥에 남아 있던 협력자가 단 9명뿐이었다! 이것이 프랑스 사회의 점령기 논의를 오랫동안 봉쇄했다. 프랑스인들은 오늘날 제2차 세계대전의 불명예스러운 장면들을 되새기기보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쪽을 선호한다.

참고 자료

  • 샤를 발푸르, 『파리의 건축가』, Znak Horyzont, 크라쿠프 2016

서지 정보

  1. 앤턴니 비버, 아르테미스 쿠퍼, 『파리 해방』, Znak, 크라쿠프 2015
  2. 틸러 J. 마제오, 『호텔 리츠: 파리에서의 삶, 죽음, 그리고 배신』, Znak, 크라쿠프 2015
  3. 앨런 라이딩, 『쇼는 계속되었다: 점령기 파리의 문화생활』, Świat Książki, 바르샤바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