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버논 J. 베이커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영웅적 전공에도 불구하고 왜 1997년에야 명예훈장을 받았을까?

미 육군 장교 버논 J. 베이커(Vernon J. Baker, 1919~2010)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눈부신 용맹을 보였지만, 미군의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기까지 무려 반세기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가 마침내 훈장을 받은 날짜는 1997년 1월 13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손으로부터였습니다.

1945년, 이탈리아 전선의 영웅

베이커는 1945년 4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탈리아 비아레조 근처의 전투에서 중위로서 독일군 방어선 돌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적진 깊숙이 홀로 침투해 기관총 진지와 저격 거점 여러 곳을 파괴하고, 부상당한 동료를 옮겨 숨지 않도록 조치하는 등 놀라운 용기와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전공은 당시 '공로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으로 인정받았지만,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 후보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50년간의 공백, 그 이유는 인종 차별

결론부터 말하면, 베이커가 1997년까지 기다려야 했던 핵심 이유는 체계적인 인종 차별 때문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은 인종별로 분리된 부대에서 복무했으며, 그들의 전공은 심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평가절하되거나 무시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단 한 명의 흑인 병사도 명예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베이커를 포함한 많은 흑인 군인들의 명예훈장 추천은 상급 심사 단계에서 취소되거나 하급 훈장으로 격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재조사, 그리고 늦은 정의 회복

1990년대에 들어 미 육군은 과거의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공식적인 재검토에 착수했습니다. 1993년 쇼 대학(Shaw University)에 의뢰한 연구는 흑인 병사들이 인종차별로 인해 명예훈장 수여 대상에서 배제되었음을 확인했고, 이후 육군의 심사를 거쳐 7명의 흑인 참전 용사가 소급하여 명예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중 생존해 있던 유일한 수훈자가 바로 버논 베이커였습니다.

1997년 1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베이커에게 직접 명예훈장을 수여했으며, 나머지 6명은 사후에 추서되었습니다. 베이커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동료들과 희생된 전우들을 대표한다는 뜻을 밝히며, 늦게나마 이루어진 정의의 회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요컨대 베이커의 50년간의 기다림은 그의 공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군의 편견과 부당한 심사 관행 때문이었습니다. 1997년의 명예훈장 수여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싸운 모든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에 대한 국가적 사과와 헌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