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복수자, 조로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
검은 모자와 망토를 두른 채 검을 휘두르고, 떠나는 자리마다 'Z' 자 표식을 남기는 가면 복수자 조로의 모습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조로 이야기의 근간에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억압받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겪은 절박함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미국 정착민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가 되었다.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유럽인은 스페인 국기를 게양한 포르투갈 출신 항해사 주앙 로드리게스 카브릴루(João Rodrigues Cabrilho)였다. 1542년 샌디에이만에 도착한 그의 발걸음은 이후 279년간 지속될 스페인 통치의 서막을 열었다. 이 시기 캘리포니아는 당시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멕시코와 필리핀 사이 항로를 오가는 이베리아 상인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수행했다.
스페인 선교사들 역시 이 땅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현지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산호세 같은 미래 도시의 토대를 마련했다. 멕시코 사람들은 이 도시들로 자유롭게 이주해 왔다. 1821년 멕시코가 캘리포니아를 합병하면서—처음에는 제국의 일부로, 이후 공화국의 영토로—그들은 더욱 만족스러워했다.
이 지역은 새로운 지배 아래 20년 넘게 머물렀다. 1846년 잠시 독립국인 캘리포니아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으나, 곧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에 편입되었다.
새 주인들은 한동안 남서부 영토를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 가득한 황량한 언덕 어딘가에 황금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자 위대한 골드러시가 시작되었고, 7년에 걸쳐 미국 각지와 유럽에서 약 30만 명의 이주민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복수자의 탄생
그러나 새 정착민들은 그동안 이 지역에 살아온 멕시코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멕시코인들을 새로운 권력과 질서에 복종해야 할 패자로 여겼고, 승자보다 낮은 계층으로 취급했다. 설상가상으로 멕시코인들이 이미 수년간 현지에서 금을 채굴해 왔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호아킨 무리에타(Joaquín Murrieta)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초기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확실한 것은 1830년 멕시코 알라모스(Álamos)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며 농촌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땅을 일굴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더 컸다. 젊은 아내와 함께 번영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삶은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형의 황금 이야기에 이끌려 그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무리에타는 처음에는 새 터전에서 순탄하게 잘 나아갔다. 언덕 어딘가에 숨겨진 자신만의 작은 엘도라도를 찾아낸 것이다. 그가 채굴하기 시작한 금의 정확한 가치는 알 수 없지만, 하루 약 300달러어치로 추정된다. 오늘날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수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불행히도 그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호아킨 무리에타 (작가 미상, 약 1848년)
미국 정착민들은 새로운 재산과 금광 지역을 요구했다. 물론 무리에타는 자신의 재산을 새 관리자들에게 내주기를 꺼렸고, 그 대가로 처벌을 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호아킨은 구타당한 뒤, 폭력배들이 그의 아내를 고문하고 성폭행한 끝에 살해하는 장면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단독 사건이 아니었다. 수많은 멕시코 정착민들이 이런 종류의 폭력을 경험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새 당국은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두려움과 억울함 속에 살았고, 이는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불러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엘도라도의 로빈 후드'가 탄생했다.
복수극의 시작
겪었던 시련과 고난 이후 무리에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 가족 일부가 살던 마을로 이주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은 호아킨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곧 그의 형이 말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린치를 당한 것이다. 형의 죽음은 그의 분노 저울을 완전히 기울여 놓았다. 무리에타는 겪은 피해에 대한 복수, 즉 벤데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호아킨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들에게 복수했다. 첫 번째 희생자는 형을 고문했던 자 중 하나였다. 그를 살해하고 토막 낸 뒤, 밤을 틈타 그의 시신을 미국인 야영지에 던져 넣었다. 이는 다른 억압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그들의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의 활동은 곧 다른 멕시코인들의 눈에 띄었고, 그중 일부는 자신들이 겪은 잘못에 대한 복수를 원했다. 이렇게 '5인의 호아킨(The Five Joaquins)' 또는 '무리에타 일당(Murrietas)'이라 불리는 갱단이 결성되었다. 젊은 남녀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악명 높은 마누엘 가르시아, 이른바 '세손가락 잭(Three-Fingered Jack)'도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해리 러브 대위
그들은 동포를 박해한 자들을 추적하고 복수했다. 주요 표적은 살인범과 강간범이었지만, 캘리포니아가 미국에 편입된 후 멕시코인들의 금광 토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강탈한 정착민들도 포함되었다. 현지 언론은 일당이 습격한 가옥 등지에서 수수께끼의 'M' 자가 발견된다고 보도했다. 동족들의 눈에 이들은 지역 영웅으로 비쳤지만, 미국인들에게 그들은 신속히 제거해야 할 무법자들이었다.
이 임무가 캘리포니아 레인저스(California Rangers)에 맡겨졌다. 그들은 상당한 보수를 조건으로 무리에타 일당을 추적해 제거해야 했다. 임무를 지휘한 것은 해리 러브(Harry Love)로, 그는 호아킨의 처남을 붙잡으면서 추적을 시작했다. 고문을 통해 그가 일당의 은신처 위치를 밝혀내야 했다.
비극적 최후
러브와 그의 부하들은 1853년 7월 25일 복수자들을 기습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일당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며, 마누엘 가르시아와 호아킨 무리에타 본인도 그중에 포함되었다. 최종적으로 레인저스는 임무 수행의 대가로 6,000달러를 받았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만 달러에 해당한다.
승리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해리 러브는 무리에타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와 가르시아의 손을 잘라 보관했고, 이후 이를 1인당 1달러의 입장료를 받고 관람객들에게 전시했다. 이 기묘한 유품들은 2015년에야 비로소 품위 있는 방식으로 안장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진짜 호아킨 무리에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러브가 정말로 무리에타를 죽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캘리포니아 당국은 이 믿음을 굳히려 애썼지만, 전설은 이미 저마다의 생명을 얻어 자라나기 시작했다.

1853년 스톡턴에서 열린 무리에타의 머리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
호아킨의 죽음으로 여겨진 지 1년 후, 존 롤린 리지(John Rollin Ridge)가 『유명한 캘리포니아 무법자 호아킨 무리에타의 생애와 모험(The Life and Adventures of Joaquín Murrieta: The Celebrated California Bandit)』을 집필했다. 이 소설은 유명한 무법자의 일대기를 그렸을 뿐 아니라, 원주민 출신 작가가 집필해 출판한 최초의 소설로도 평가받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무리에타의 캐릭터는 지역 설화 속에 계속 등장했고,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결국 그는 존스턴 맥컬리(Johnston McCulley)에게 상징적인 영웅 조로를 탄생시키는 영감을 주었다. 조로의 모험은 처음에는 책의 페이지에서, 이후에는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이 캐릭터는 모든 이들에게 억압받는 자들의 수호자, 즉 멕시코판 로빈 후드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