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블러디 먼데이(Bloody Monday)', 즉 '피의 월요일'이라고 불리는 비극적인 사건이 세 번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벌어졌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평화로운 시위가 무력 진압으로 이어져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1. 러시아의 블러디 먼데이 — 1905년 1월 22일
첫 번째 사건은 1905년 1월 22일(당시 러시아가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으로는 1월 9일)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폰 신부가 이끄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개혁을 요구하며 차르에게 청원하기 위해 평화롭게 행진했지만, 황실 근위대가 군중에게 발포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심을 크게 자극하여 전국적인 파업과 폭동으로 확산되었고, 훗날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2.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러디 먼데이 — 1960년 3월 21일
두 번째 사건은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했습니다. 흑인들에게 이동과 거주를 엄격히 제한하던 악명 높은 통행증법(pass laws)에 반대하는 평화로운 시위가 열렸으나, 경찰이 군중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대량 학살로 번졌습니다.
이날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매년 3월 21일은 남아공의 국경일인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3. 라이베리아의 블러디 먼데이 — 1979년 4월 14일
세 번째 사건은 1979년 4월 14일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쌀값 인상 조치에 항목하는 정부 반대 시위가 몬로비아에서 평화롭게 시작되었지만, 정부군이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라이베리아 사회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심화시켰고, 이듬해인 1980년 쿠데타로 이어지는 등 라이베리아 내전의 원인이 된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세 사건이 주는 의미
러시아(19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1960년), 라이베리아(1979년)에서 벌어진 세 번의 블러디 먼데이는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모두 무장하지 않은 시민의 목소리가 국가 권력의 폭력에 의해 짓밟힌 역사입니다. 이러한 비극들은 오늘날 집회와 시위의 자유, 그리고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