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 재판을 두고 '흑색 장난(black mischief)'이라고 말할 때 감도는 아이러니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역사의 모순을 정면으로 겨냥한 비판입니다. 핵심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 재판이야말로 '흑마법', 즉 마녀술의 위협을 명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악마를 응징하려던 재판이 '장난'이 되다
17세기 세일럼 마녀재판을 비롯한 주술 재판은 '검은 마법이 우리 사회 안에 침투했다'는 공포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흑마법을 실존하는 최대의 악으로 여겼고, 그것을 색출해 처벌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 전체를 '흑색 장난'이라고 부르는 순간, 신성과 악마를 걸고 벌였던 진지한 소송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소동으로 격하되고 맙니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장난'이란 본래 심각하지 않은 놀이를 뜻하지만, 재판을 움직인 동력은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흑마법의 공포'였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공포에 이끌려 무고한 이웃을 박해했고, 그 결과물은 어떤 장난보다도 훨씬 잔혹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박해의 위선을 비추는 거울
'흑색 장난'이라는 표현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악'이라 불린 것은 누구인가? 주문을 외웠다고 고발당한 소녀들이었을까요, 아니면 종교적 열정을 내세워 이웃을 교수형에 보낸 사회 그 자체였을까요?
이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악하거나 유해하다고 규정된 관습을 이유로 사람들을 탄압한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위선적이었는지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진정한 흑마법은 숲속의 춤이나 미신적 행위 같은 것이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힌 집단이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한 폭력이었다는 것입니다.
히스테리와 부정의 기록으로 남다
실제로 주술 재판은 합리적인 증거와 절차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집단적 히스테리와 사회적 불안이 빚어낸 부정의 산물이었습니다. 근거 없는 고발과 강요된 자백이 반복되었고, 수많은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흑색 장난'이라는 표현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깊은 사유를 자극합니다. 한편으로는 재판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듯 들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난'이 실제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앗아간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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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black mischief(흑색 장난)'이라는 표현은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럼의 마녀(The Crucible)』에서도 등장합니다. 극중 인물들은 숲속에서 소녀들이 저지른 일을 이 말로 지칭하며, 마녀재판의 광기를 풍자적으로 담아낸 대목으로 자주 회자됩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비판하기 위해 쓰였으며, 집단 공포가 어떻게 정당화된 박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이름 붙이기 자체가 비판이다
주술 재판을 '흑색 장난'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강력한 비평입니다. 악마 퇴치를 명분으로 삼았던 재판이 실제로는 사회가 저지른 가장 큰 악행 중 하나였음을 폭로하고, 공포가 이성을 대신하는 순간 정의는 가장 잔인한 형태로 뒤틀린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은 진짜 악인가, 아니면 우리의 공포가 만들어낸 허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