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하나의 약속입니다. 시간 자체와 그 셈법이 그렇듯이 말이죠. 다만 여기서는 물리적인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역사적인 문제를 다뤄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새해는 늘 1월 1일에 시작했을까요?
문화권마다 시간은 저마다 중요한 사건, 대개는 전설로 전해지는 사건(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으로부터 계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세계의 창조나 어떤 획기적 전환점, 즉 위대한 인물의 탄생이나 죽음 같은 사건에서 시간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연대학(크로놀로기)을 통해 측정됩니다. 연대학은 수학·천문학적 분야와 실용적, 즉 역사적 분야로 나뉘며, 역사학의 대표적인 보조 학문 중 하나입니다. 그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른바 '기원(era)'과 '연도 시작 방식(style)'에만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달력과 기원
달력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분류 기준은 당연히 특정 현상, 주로 천문 현상의 관찰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달의 주기나 하늘에서 태양이 겉보기에 움직이는 운행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반복되는 주기는 큰 시간 단위를 작은 단위로 나눕니다. 1년은 달로, 달은 다시 날로 나뉘는 식입니다.
달력은 태양력(마야력, 아즈텍력, 율리우스력, 현재의 그레고리력 등), 태음력(로마력, 이슬람력, 바빌로니아력, 고대 그리스력 등), 태음태양력(이집트력 등)으로 구분됩니다. 시간의 계산은 이른바 단기(순환적) 기원 또는 장기(선형) 기원에 따라 정해지기도 합니다. 전자는 다양한 길이의 주기, 즉 년, 월, 혹은 통치자의 재위 기간부터 셉니다. 반면 장기 기원은 어떤 중요한 사건으로부터 계산됩니다.
예를 들어 그레고리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는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그리스도는 로마 건국 후 753년에 태어났다"고 계산한 데 따른 것인데, 오늘날 이 날짜는 틀린 것으로 간주되며 예수는 실제로 기원전 4~6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잔틴 기원은 세계 창조(기원전 5509년)부터, 알렉산드리아 기원은 기원전 5493년부터, 유대 기원은 기원전 3761년부터 셉니다. 첫 번째는 비잔틴 전통과 관련 있으며, 나머지 둘은 각각 5세기에 활동한 이집트 수도사 파노도로스와 아논니오스, 그리고 4세기의 힐렐 2세 랍비의 계산에 근거합니다.

카이사르의 개혁 이전 로마 안티움 달력(Fasti Antiates) 복제본
이슬람 기원은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히즈라(622년)부터 셉니다. 불교 기원은 부처의 입멸(기원전 624년 또는 560년)로 시작합니다. 순교자 기원은 서기 284년부터 시작되며 지금도 에티오피아 교회와 콥트 교회에서 사용됩니다(이 날짜는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즉위를 가리킵니다). 그 밖에 최초의 올림픽 경기(기원전 776년)로부터 연대를 잡는 소위 올림피아드 기원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학에 등장하는 장기 기원이 이것뿐인 것은 아닙니다.
연도 시작 방식
과거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해(year)'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재판소에 출석해야 하는 기한을 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안노(anno)/안누스(annus)', 즉 '해'를 의미하는 단어가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특정 문화권에서 사용된 기원이 다음 해를 시작하는 관습과 일치하지 않을 때, 사건의 시기를 확정하는 데 큰 골머리를 앓곤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식, 즉 할례식(Circumcisio) 방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방식에서는 1월 1일에 새해가 시작됩니다(우리에게는 익숙하죠!). 기독교가 채택했지만 그 이전부터 시행되던 방식입니다(카이사르가 도입했습니다). 왜 이름에 시간의 흐름과는 거리가 먼 듯한 단어가 들어갔을까요? 그 유래는 물론 예수의 할례식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할례식은 탄생 8일 후에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는 이 방식이 드물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되었습니다(예: 프랑스는 1567년부터).
부활절 방식, 이른바 프랑스식은 이동 가능한 축일(놀랍게도!)에 맞춰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새해는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 어느 날에 시작될 수 있었고, 한 해의 날수도 매번 달랐습니다. 이 방식은 서방에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는 16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공화정 로마에서는 3월 방식(Martius)이 사용되어 3월 1일을 한 해의 첫날로 삼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베네치아에서는 18세기 말까지 이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새해의 첫 달로 3월이 자주 선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Annuntiatio) 방식에서는 3월 25일에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피사식과 피렌체식 두 변형으로 나뉩니다. 후자가 더 널리 퍼졌으며, 영국에서는 13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오랫동안 정착해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력 제2년(1793~1794)
중세 대부분의 왕실 문서에서 사용된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소위 성탄(Nativitate) 방식으로, 12월 25일부터 새해를 셉니다. 이 방법은 해당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쓰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폴란드에서는 얀 올브라흐트 국왕(재위 1492~1501) 치세까지 사용되었는데, 그는 할례식 방식으로 기울었습니다(다만 성탄 방식은 16세기에도 일부 도시의 장부 기록 등에서 여전히 사용되었습니다).
새해를 계산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근대에 등장한 혁명 방식이 있습니다. 연도는 1792년 9월 22일, 즉 프랑스 제1공화국 수립일부터 셉니다. 설계는 질베르 로메가 담당했고, 날과 달의 이름은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배우, 시인인 필리프 파브르 데글랜틴이 지었습니다. 이 달력은 그레고리력의 날수를 유지했으나, 한 달을 10일씩 3개의 데카드(decade)로 나눈 점이 달랐습니다. 마지막 날은 휴일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루를 10시간으로, 1시간을 100분으로 나누는 방안도 계획되었습니다.
매일은 동물, 광물, 자연 현상, 도구와 관련된 이름을 가졌습니다. 달의 이름은 주로 기상 현상을 가리키는 단순한 단어에서 왔습니다. 짙은 안개를 뜻하는 브뤼메르(Brumaire, 프랑스어 brume), '더운'을 뜻하는 테르미도르(Thermidor, 그리스어 thermos)가 그 예이며, 식품에서 따온 프뤽티도르(Fructidor, 라틴어 fructus, 과일)도 있었습니다.
1806년 1월 1일, 나폴레옹은 그레고리력을 복원했습니다. 이후 혁명력은 파리 코뮌 기간(1871년 3월 18일~5월 28일)에 잠시 다시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참고 문헌
- Cisek A., 『바스티유의 거짓: 대프랑스혁명의 사건과 사람들에 관한 스케치』, 그단스크 2011.
- Gajek B., 『시간이란 무엇인가』, "Newsweek Historia" 2/2019.
- Opolski A., 『달력과 그 역사』, 브로츠와프 1948.
- Szymański J., 『역사학의 보조 학문』, 바르샤바 2012.
- Włodarski B., 『폴란드 연대학』, 바르샤바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