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테쿰세 셔먼은 누구인가?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년 2월 8일 ~ 1891년 2월 14일)은 미국의 군인이자 사업가로,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 북군(연방군)을 지휘하며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인물입니다. 그는 미시시피 강 유역과 남부 깊숙한 지역을 북군 손에 넣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1864~1865년 조지아와 캐롤라이나를 가로지르는 유명한 '바다로의 행진(March to the Sea)'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군 경력의 시작
셔먼은 오하이오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1840년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군에 복무했으며, 멕시코-미국 전쟁과 세미놀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군 경력을 쌓았고, 잠시 군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와 세인트루이스에서 은행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전쟁 초기 활동
전쟁이 발발하자 셔먼은 켄터키와 테네시 전선에서 복무했습니다. 1862년 4월에는 남북전쟁에서 가장 처참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실로(Shiloh)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습니다. 이 시기 그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지휘 스타일로 주목받았습니다.
빅스버그와 채터누가 전역
1863년 초, 셔먼은 테네시군 소속 제15군단장으로 임명되어 빅스버그 전역에서 활약했습니다. 빅스버그의 함락으로 북군은 미시시피 강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고, 이는 남부 연합을 동서로 갈라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채터누가 전역에서 테네시군을 지휘하며 미셔너리 능선(Missionary Ridge)과 룩아웃 마운틴(Lookout Mountain) 전투에서 성공적인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조지아 진군과 '바다로의 행진'
1864년 셔먼은 애틀랜타를 함락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재선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조지아를 가로질러 사바나까지 진군하는 '바다로의 행진'을 감행했습니다. 철도와 공장, 물자 저장고 등 남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하는 초토화 작전을 펼친 것입니다. 1865년에는 캐롤라이나로 진격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를 점령했고, 같은 해 4월 로버트 E. 리 장군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을 맺었습니다. 셔먼의 행진이 전쟁의 종결을 앞당겼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전쟁 이후의 삶
전쟁이 끝난 후 셔먼은 1869년부터 1883년까지 미국 육군 총사령관(Commanding General of the United States Army)을 역임했습니다. 재임 중에는 서부 개척지에서 벌어진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분쟁을 총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1875년에는 회고록을 출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셔먼은 1891년 2월 14일 뉴욕에서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논란과 역사적 평가
셔먼은 생전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논란이 많은 인물입니다. 특히 조지아와 캐롤라이나 행진 당시 사용한 초토화(scorched-earth) 전술은 민간인 피해와 도시 파괴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총력전(total war)'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하고 전쟁 범죄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그는 "전쟁은 지옥이다(War is hell)"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북전쟁의 종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장군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