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은 오하이오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40년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8년 동안 미국 육군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는 멕시코-미국 전쟁과 세미놀 전쟁에 참전했으며, 남북 전쟁 이전에는 다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남북 전쟁이 시작될 때 셔먼은 켄터키와 테네시에서 복무했으며 그곳에서 공격적인 전술로 주목을 받았으며 "빌리 양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1862년 4월 실로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참여한 연합 장군 중 한 명이었습니다.
1863년 초, 셔먼은 테네시군 제15군단의 지휘권을 받았고, 빅스버그 전역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채터누가 전역에서 테네시군을 지휘하여 미셔너리 리지(Missionary Ridge)와 룩아웃 마운틴(Lookout Mountain)에 대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셔먼은 1864~65년에 조지아와 캐롤라이나를 거쳐 유명한 행군을 펼쳤고, 그 결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를 점령하고 로버트 E. 리 장군이 이끄는 남부 연합군이 항복했습니다. 셔먼의 행군은 종종 전쟁 종식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됩니다.
남북 전쟁 후 셔먼은 1869년부터 1883년까지 미 육군 총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또한 1875년부터 1881년까지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의회에서 복무했습니다. 셔먼은 1891년 뉴욕에서 사망했습니다.
셔먼은 일생 동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의 군사 전술, 특히 조지아와 캐롤라이나를 행진하는 동안 초토화 전쟁을 사용한 것은 당시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역사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셔먼이 남북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장군 중 한 명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