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 12월 29일, 잉글랜드 캔터베리 대성당 안에서 토마스 베켓(Thomas Becket) 대주교는 머리를 향해 검으로 네 번 내려쳐 생명을 잃었습니다.
비극의 배경
베켓은 당시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의 가장 신뢰하던 측근이었으나, 캔터베리 대주교로 서임된 이후 왕권과 교회 권한의 경계 문제를 두고 국왕과 격렬히 대립하게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분노한 헨리 2세는 "누가 저 성가신 사제를 없애주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던졌고, 이 말을 들은 기사 네 명—레지널드 핏츄어스, 휴 드 모르빌, 윌리엄 드 트레이시, 리처드 르 브르통—이 대주교 암살을 결행했습니다.
네 번의 일격
당시 목격자였던 수도사 에드워드 그림의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 공격으로 베켓의 머리 위가 크게 갈라졌고, 이어진 세 차례의 공격으로 그는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마지막 일격은 그의 두개골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했다고 전해집니다. 베켓은 제단 근처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방패 역할을 하다 부상당한 에드워드 그림의 증언은 이 사건을 후대에 전하는 핵심 자료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여파
이 살해 사건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고, 베켓은 117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는 그의 성유물을 모신 순례지가 조성되어 중세 내내 수많은 순례자가 찾았으며, 이러한 배경은 훗날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헨리 2세는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왕권과 교회권의 관계에도 오랜 그늘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