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 3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발생한 소위 보스턴 대학살(Boston Massacre)은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 해석에서는 이 사건을 전통적인 의미의 '학살'이 아니라 '폭동(riot)'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어떤 근거 때문일까요?
보스턴 대학살이 폭동으로 분류되는 세 가지 이유
1. 명확한 가해자가 없었다
영국군 병사들은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발포한 것이 아니었고, 식민지 주민들 역시 하나의 통일된 조직 아래 움직인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은 어느 한쪽의 계획에 따라 실행된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터진 자발적이고 혼란스러운 사태였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2.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현장에 모인 식민지 주민들에게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나 요구 사항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군 병사들 역시 단지 질서를 유지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려 했을 뿐입니다. 즉, 양측 모두 계획된 행동이 아니라 상황에 휩쓸린 것이었습니다.
3. 폭력은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영국군과 식민지 주민 양측 모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라 상호 충돌 속에서 비극이 빚어진 것입니다.
'폭동'의 일반적인 정의와 비교
일반적으로 폭동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정의됩니다.
- 대규모의 분노한 군중: 감정적으로 격앙된 다수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 폭력 또는 재산 파괴: 물리적 폭력 행위나 재산 피해가 동반됩니다.
- 명확한 지도력·조직의 부재: 체계적인 지휘 구조나 사전 계획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 자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발생합니다.
결론: 폭동으로 보아야 할 근거
보스턴 대학살 당시의 상황은 위에서 제시한 폭동의 모든 기준을 충족합니다. 격앙된 군중이 모였고, 폭력이 발생했으며, 조직적인 지도부 없이 자발적으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단순한 '학살'이 아닌 '폭동'으로 분류하는 것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역사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