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매튜 헨슨과 로버트 피어리는 누구일까? 북극점 탐험의 두 주역

매튜 헨슨(Matthew Henson, 1866~1955)과 로버트 피어리(Robert Peary, 1856~1920)는 1909년 4월 6일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주장된 역사적인 원정을 함께 수행한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사람의 배경과 역할, 남긴 업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논란까지 살펴봅니다.

1. 매튜 헨슨: 뛰어난 항해사이자 탐험가

  • 출생: 1866년 8월 8일, 미국 메릴랜드주 찰스 카운티
  • 역할: 탐험가이자 항해사

헨슨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선원·항해사·탐험가로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십대 후반에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항해술과 선박 운항 기술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북극 탐험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1890년대 초부터 로버트 피어리와 함께 여러 차례 북극 원정에 참여했으며, 항해와 썰매 행군 작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1909년 4월 6일 북극점 도달을 주장한 원정에도 피어리와 동행했습니다. 헨슨은 북극 탐험 내내 피어리 팀의 없어서는 안 될 일원으로서 과학 조사와 지리학적 발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 로버트 피어리: 북극 탐험의 선구자

  • 출생: 1856년 5월 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크레슨
  • 역할: 북극 탐험가이자 미국 해군 장교

피어리는 평생 해군에 몸담은 직업 군인으로, 극지 탐험에 강한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북극점 도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재직 기간 내내 여러 차례 북극 원정을 이끌며 체계적인 탐험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마지막이자 가장 유명한 원정에서 피어리는 매튜 헨슨을 비롯한 대원들과 함께 1909년 4월 6일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적은 당시부터 도달 기록의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되며 회의와 논란에 부딪혔고, 현대의 연구 역시 실제 북극점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원정들은 북극 지역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을 크게 넓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와 유산

매튜 헨슨과 로버트 피어리의 관계는 복잡했습니다. 피어리는 사적으로는 헨슨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지만, 공개석상에서는 그의 핵심적인 역할에 걸맞은 인정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적 편견 속에서 헨슨의 이름은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렀습니다.

헨슨의 북극 탐험에서의 공헌이 제대로 조명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는 말년에 명예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사후에는 1988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2000년에는 내셔널 지리 협회로부터 허버드 메달이 추서되는 등 그 업적이 비로소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오늘날 헨슨은 북극 탐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