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를 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 헨드릭 페르워르드

인종차별 정책으로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체계적으로 만든 인물은 일반적으로 헨드릭 페르워르드(Hendrik Verwoerd)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국민당 집권과 아파르트헤이트의 시작

1948년,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국민당(National Party)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권을 잡으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워르드는 이 국민당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1958년부터 1966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하며 인종 분리 정책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분리 발전'이라는 명분과 반투스탄 정책

페르워르드는 서로 다른 인종 집단이 '별개로 발전해야 한다'는 이른바 분리 발전(separate development) 논리를 신봉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흑인 남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별도의 자치 지역인 반투스탄(Bantustan), 즉 '흑인 고향(homeland)'을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명분상 자치를 부여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흑인들을 국가의 주류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차별을 제도화한 주요 법률

페르워르드는 흑인 남아프리카인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수많은 법률과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대표적인 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구등록법(Population Registration Act): 모든 국민을 피부색에 따라 인종별로 등록·분류하여 차별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 집단지역법(Group Areas Act): 인종별로 거주 지역을 강제로 구분하여 흑인들이 특정 지역에 살거나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 반투교육법(Bantu Education Act): 흑인 학생들에게 열등한 교육만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세대 간 불평등을 고착화했습니다.

그 후의 역사

페르워르드는 1966년 의회에서 암살당했지만, 그가 세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그 이후로도 수십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국내외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첫 전인종 민주 선거가 치러지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고, 넬슨 만델라가 초대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