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 보스턴 학살 사건으로 기소된 영국군 병사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렇게 보는 대표적인 근거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편향된 재판 장소
재판은 사건이 발생한 보스턴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보스턴 시민들의 여론은 영국군에 극도로 적대적이었고, 배심원단 역시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품은 배심원들이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으며, 방어 측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불리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 부족한 변호인 자원
변호를 맡은 것은 존 애덤스와 조사이어 퀸시 주니어 단 두 사람뿐이었고, 이들은 여덟 명의 병사를 동시에 변호해야 했습니다. 한 명의 변호인이 여러 피고인을 함께 맡다 보니 개별 피고인에게 집중되는 변호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변호 측은 자료, 증인, 증거에 대한 접근도 제한받아 탄탄한 방어 논리를 구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3. 편향적인 언론 보도
보스턴의 신문들은 영국군 병사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병사들의 행동을 과장하고 극단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들이 잇따르면서 여론은 피고인들에게 더욱 적대적으로 흘러갔습니다. 이러한 언론 분위기는 공론장 전체를 조성했을 뿐 아니라 배심원들의 중립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됩니다.
4. 제한된 증인 확보
변호 측은 사건에 결정적인 증언을 할 수 있었던 일부 증인을 소환하는 데 제약을 받았습니다. 특히 병사들의 지휘관이었던 토머스 프레스턴 대위의 증언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면서, 재판 결과를 달라질 수 있었던 핵심 진술을 방어에 활용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5. 법적 절차의 문제점
검찰 측은 통상 법정에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전문(傳聞) 증거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피고인이 자신을 고발한 상대방과 직접 대면하여 반박할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배심원단의 최종 판단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 보면, 보스턴 학살 사건 재판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다만 존 애덤스의 헌신적인 변호 덕분에 병사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받은 점을 들어 재판의 성실성을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함께 존재합니다. 어느 쪽이든, 위와 같은 조건 속에서 피고인들이 충분히 정당한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의문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