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과학자, 발명가, 외교관, 저술가로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프랭클린은 1790년 필라델피아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노벨상은 그로부터 1세기 이상이 지난 1901년에야 처음 시상되었습니다. 즉, 두 사람의 시대가 서로 겹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벨상은 언제 만들어졌나?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남긴 유언에 따라 제정되었습니다. 노벨은 1896년에 사망했고, 그의 유산으로 설립된 재단은 1901년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부문에서 첫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1969년에는 스웨덴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경제학 부문이 추가되었습니다.
프랭클린이라면 충분한 수상 후보였을까?
만약 노벨상이 프랭클린의 생전에 존재했다면, 그는 손꼽히는 후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실험으로 밝혀내 피뢰침을 발명했고, 프랭클린 스토브, 유리 하모니카, 이안렌즈 등 실용적인 발명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또한 해류를 연구해 멕시코만 해류의 흐름을 지도로 정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프랭클린은 노벨상 제정보다 앞선 시대에 활동한 인물이었기에 이 상과 인연을 맺을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임되고 과학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인 코플리 메달을 받는 등, 당대 최고의 학술적 영예를 누렸습니다.
정리
벤자민 프랭클린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1790년에 사망한 반면 첫 노벨상 시상식은 1901년에 열렸기 때문으로, 두 시점 사이에는 약 110년의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그의 업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상 제도 자체가 그의 시대 이후에 등장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