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말기는 정치적 혼란과 권력 다툼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가이우스 마리우스(Gaius Marius)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Lucius Cornelius Sulla)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원로원이 진정 두려워한 인물은 마리우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많은 로마 원로원 의원들이 더 큰 위협으로 여긴 인물이 술라가 아니라 마리우스였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상당수 의원들은 마리우스를 정무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정치적으로 제거하기를 원했습니다.
마리우스는 평민 출신으로 군사 개혁을 통해 막대한 인기를 얻었고, 집정관에 무려 일곱 번이나 선출될 만큼 강력한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발적인 인기와 군에 대한 개인적 영향력은 전통 귀족 계층인 원로원에게 공화정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술라를 옹호한다는 것의 의미
반면 술라는 귀족 보수 세력(옵티메테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기에, 원로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옹호할 필요가 있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술라를 지지하는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을 편드는 문제가 아니라, 원로원 중심의 전통적 공화정 체제를 지키려는 정치적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마리우스와 술라의 갈등은 로마 최초의 대규모 내전으로 번졌고, 술라는 승리 후 독재관에 올라 원로원의 권위를 강화하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가 '공화정의 적'으로 규정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원로원이 진정 경계했던 대상은 결국 마리우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