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클레오파트라는 왜 이집트의 여왕이 될 수 있었을까?

왕가의 혈통을 이은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가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대대로 이집트를 통치해 온 왕가의 후손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직계 핏줄로, 태어난 순간부터 이집트의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80년부터 51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의 딸이었습니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자매 결혼 등을 통해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 역시 왕위 계승권자로서 성장했습니다.

남매 간의 공동 통치와 내분

기원전 5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클레오파트라는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권력 다툼은 금세 극단으로 치달았고, 결국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단독 통치자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에서 쫓겨나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힘으로 복귀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인생은 로마의 강력한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만나며 크게 바뀌게 됩니다. 기원전 47년, 카이사르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돌아왔습니다. 카이사르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그의 군대를 팽나강 전투에서 격파했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전투 도중 익사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집트의 단독 통치자로

정적이 제거된 뒤, 클레오파트라는 마침내 이집트의 단독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명문 왕가의 혈통이라는 정통성, 그리고 로마의 힘이라는 현실적 지원이 결합되면서 그녀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