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마젤란은 여정을 끝내지 못했는데, 왜 '마젤란의 지구일주'라고 부를까?

역사책에서 흔히 '마젤란의 지구일주'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은 태평양을 건넌 뒤 필리핀 막탄섬에서 현지 주민들과의 충돌 중 전사하여, 실제로 유럽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 원정을 마젤란의 업적으로 기억하고 '지구일주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걸까요?

빅토리아호의 귀환, 1522년

마젤란이 1521년 4월 세상을 떠난 후, 원정대는 혼란과 인명 손실을 겪으며 계속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의 기함 빅토리아호(Victoria)는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Juan Sebastián Elcano)의 지휘 아래 항해를 이어갔고, 1522년 9월 스페인 세비야에 무사히 귀환하며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를 완성했습니다. 당시 출발한 약 270명의 선원 중 귀환에 성공한 이는 단 1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젤란의 이름이 남은 이유

마젤란이 직접 일주를 완주하지 못했음에도 이 원정이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원정의 기획자이자 총지휘관

대서양을 건너 남미 최남단의 해협(오늘날의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태평양으로 진출한 것은 모두 마젤란의 비전과 결단력 덕분이었습니다. 항로 설계, 함대 조직, 스페인 왕실의 후원 확보까지, 원정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과정은 그가 주도했습니다.

2. 역사적 관례와 상징성

역사학에서는 대개 원정을 기획하고 이끈 지도자의 이름으로 업적을 기립니다. 마젤란이 목숨을 잃었더라도, 그가 그린 청사진 위에서 원정이 완수되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을 넘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한 대항해'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3. 승선원들의 헌신과 인내

물론 이 위업은 마젤란 혼자의 공이 아닙니다. 괴혈병, 굶주림, 폭풍이라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배를 포기하지 않은 엘카노와 선원들의 헌신과 인내가 있었기에 빅토리아호는 마침내 항구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

요컨대 마젤란의 죽음은 원정의 비극이었지만, 지구일주 자체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초기 비전과 리더십, 그리고 끝까지 항해를 이어간 선원들의 노력이 결합되어 1522년 지구일주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 위업을 '마젤란의 지구일주'라 부르며, 동시에 엘카노의 공헌도 함께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