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포에니 전쟁의 종말, 로마가 점령한 북아프리카의 핵심 항구는 어디였을까?

그 답은 바로 카르타고(Carthago)입니다.

제3차 포에니 전쟁과 카르타고의 멸망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북아프리카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항구 도시 카르타고는 로마 공화국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을 이끌었던 지휘관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Scipio Aemilianus Africanus)로, 그는 유명한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이기도 했습니다.

카르타고가 갖는 전략적 가치

카르타고는 오늘날 튀니지 일대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 지중해 서부 무역을 장악하던 페니키아 계열 국가의 중심지였습니다. 뛰어난 항구 시설과 지중해 중심부에 근접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상업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포에니 전쟁의 배경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포에니 전쟁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니발의 알프스 산맥 횡단으로 유명한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에도 카르타고는 경제적으로 재건되었으나, 로마는 '카르타고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Ceterum censeo Carthaginem esse delendam)'라는 구호를 내걸며 최후의 결전에 나섰습니다.

함락 이후의 역사

3년에 걸친 공성전 끝에 카르타고는 함락되었고, 도시는 불태워지며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후 로마는 이 지역에 아프리카 속주를 설치했으며, 기원전 1세기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콜로니아 율리아 카르타고라는 이름으로 도시가 재건되어 로마 제국 시대 북아프리카의 번영된 중심 도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