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의 농업 기반 경제
바빌론을 포함한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범람원은 풍부한 식량 생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이 지역 경제는 농업, 특히 보리 재배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보리는 임금 지급과 일일 배급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연 음료인 맥주를 만드는 원료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아마씨유와 참기름 같은 유지류, 아마, 밀, 채소 등이 주요 생산물이었습니다. 농번기가 아닌 시기에는 양과 염소 무리가 들판에서 방목되었고, 물이 충분할 때는 소도 함께 방목되었습니다. 양모 생산은 매우 활발했으며, 생산된 양모는 천 조각으로 가공되어 거래되었습니다. 다만 메소포타미아 최남단만은 예외적으로 대추야자와 어업에 기반한 별개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자원과 그 해결책
석기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 지역에는 석재로 남긴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대형 기념물과 견고한 건축물 건설에 필수적인 광물과 목재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러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졌고, 필요한 자원들은 멀리서 조달해야 했습니다. 레바논의 삼림이나 오늘날 이란에 해당하는 산악 지역에서 공급된 것입니다. 이 산맥에는 광물, 석재, 금속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에 없는 자원은 다른 방법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공물(조공), 약탈, 그리고 무역입니다.
세금과 약탈
국가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두 가지 기본 방법은 전쟁과 무역입니다. 군사 원정을 통해 자원을 공물로 요구하거나 전리품으로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가 괴물 훔바바가 지키는 숲으로 원정을 떠나 그를 물리쳤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통해 그가 우루크의 유명한 성벽을 짓는 데 필요한 목재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또 다른 유명한 왕인 루갈반다는 승전의 대가로 곡식과 보석을 교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상업의 발전
군사 원정은 주로 수확 후에 진행되었으며, 사실상 연례 행사처럼 정기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농민이 병사가 될 수 있었던 기원전 1천년기에 더욱 활발했습니다. 구리, 주석, 은, 디오라이트라 불리는 검은 돌 등 광물들은 먼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정 비용이 과도하게 들거나 도시가 다른 적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계획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상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900년경의 문서에는 무역이 전문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었다는 흔적이 나타납니다. 상인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페르시아만을 따라 배를 이용해 장사를 했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당나귀 상단은 아나톨리아(현 터키)까지 이동했습니다.
주요 교역 상품
곡물 외에 메소포타미아 주민들이 내놓을 만한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곡물은 수출되었지만 너무 무거워서 당나귀로 장거리 운송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다른 지역에서 수입한 물자를 다시 수출하는 중계 무역이 활발했습니다. 청동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인 주석이 대표적인데, 당시 주석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여와 금속 공업의 중심지였던 아나톨리아(터키)로 수출되었습니다. 아나톨리아는 용광로를 가동할 삼림이 풍부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대추야자, 참기름, 수공예품이 주요 교역 상품이었습니다. 바빌론은 특히 큰 양모 산업을 자랑했는데, 기원전 1900년경에는 4~4.5미터 크기의 천 수백 장이 한꺼번에 운송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