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기원전 3500년~1500년, 인더스 문명의 흥망성쇠

기원전 3500년~1500년, 인더스 문명의 흥망성쇠

기원전 3500년경: 인더스 강변에 농부들이 정착하다

오늘날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인더스 강 유역은 비옥한 땅이었다.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그러했듯 강이 매년 범람했고, 사람들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복잡하고 중앙집권적인 조직을 갖추어 나갔다.

첫 도시의 등장과 무역의 시작

곧 모든 농부가 경작에 종사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일부 사람들은 다른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새로운 직업을 익히며 상업에도 진출했다. 그들의 토기와 구슬이 수메르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수메르인들과 교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재, 면화, 향신료를 팔기도 했다.

기원전 2500~1800년경: 인더스 문명의 전성기

인더스 유역에는 백여 개의 마을과 도시가 있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곳은 각각 1921년과 1922년에 발견된 모헨조다로(Mohenjo-Daro)와 하라파(Harappa)였다. 1920년까지 역사학자들은 인도 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6세기로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파키스탄 영토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만큼 오래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바둑판 모양의 도시 계획에 따라 지어졌다. 엄격하게 정렬된 직사각형 주거 구획, 폭 8미터의 거리, 직각으로 교차하며 정교한 하수도를 갖춘 골목길까지, 과거 도사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위생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 두 도시는 체계적 도시 계획의 가장 오래된 증거로 평가된다. 한편 인더스 문명의 정치·종교사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인더스 도시들에서는 신전도, 궁전도, 집회 장소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수수께끼는 여전히 고고학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연구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세금

농부들은 수확물의 일부를 도시에 바쳐야 했다.

문자

상인들은 물품의 매매 내역을 기록하기 위해 서로 다른 270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문자를 사용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인더스 유역의 문자를 해독하지 못했다.

기원전 3500년~1500년, 인더스 문명의 흥망성쇠

기원전 1700년경: 인더스 문명의 소멸

모헨조다로는 심각한 홍수를 겪은 후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한다. 그리고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다른 모든 도시들마저 버려졌다.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다. 농부들이 지나치게 집약적인 경작과 과도한 삼벌로 땅을 황폐화시켰을 가능성, 도시 간의 분쟁 발발, 혹은 대홍수 같은 자연재해 등이 그것이다.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안족의 침입

인더스 지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목민족 아리안족(Aryans)에게 침입당했다. 그들은 점차 북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