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체로 사카모토 료마나 오다 노부나가가 1위로 꼽힙니다.
오다 노부나하는 출신이나 사상을 불문하고 오직 실력에 따라 부하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인물로 유명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무장, '니와 나가히데'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오다 가문의 충신

전국시대, 시바 씨와 오다 씨는 나고야 일대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권력 다툼을 벌였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집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가 직접 세 번째 아들 노부나가를 후계자로 지명했음에도, 시바타 가츠이에와 노부나가의 양육을 맡았던 하야시 히데사다는 동생 노부유키를 내세워 노부나가와 맞섰습니다.
니와 나가히데는 1550년부터 노부나가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노부히데가 세상을 떠난 것이 1552년, 형제 간의 내분이 있었던 것이 1556년경입니다. 니와 나가히데는 노부나가가 아직 기요스의 젊은 주군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한결같이 그를 따랐으니, 노부나가에게는 심복이라 할 만한 인물입니다.
니와 씨는 원래 시바 씨를 섬겼다고 전해지지만, 나가히데의 아버지 대부터 오다 씨를 섬겨왔습니다.
니와 나가히데는 오다 노부나가보다 한 살 어렸으며, 15세 때부터 근신(近習)으로서 노부나가 곁을 지켰고, 주요 전투 대부분에 참여했습니다.
형제 간의 내분에서는 노부나가 편에 섰고, 물론 이마가와와의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미노의 사이토 류오키와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확실한 공을 세웠고, 이후 롯카쿠 씨와의 전투에서는 히데요시와 함께 미노와 성을 공략하는 등 활약을 넓혀갔습니다.
아사이·아사쿠라와의 결전인 아네가와 전투에서는 견고하기로 유명한 사와야마 성을 공략하고, 이소노 가즈마사를 설득해 항복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573년에는 노부나가로부터 와카사 국을 받으며, 노부나가의 가신 중 최초로 한 개 국을 통째로 영지로 받은 무장이 되었습니다. 노부나가가 니와 나가히데를 얼마나 우대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1576년에는 아즈치 성 축조의 총봉행을 맡아 완공까지 지연 없이 임무를 수행하며 높은 정무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이후 노부나가 휘하에서 이시야마 혼간지, 다케다, 잇코잇키 등 여러 세력과 싸웠고, 그때마다 문무를 겸비한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오다 가문 중신들의 서열에서는 시바타 가츠이에에 이어 2위였으며, 두 사람은 오다 가문의 양대 장수로 함께 활약했습니다.
혼노지의 변 이후
천하를 손에 넣으려던 노부나가는 혼노지의 변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반역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니와 나가히데는 노부나가의 세 번째 아들 오다 노부타카의 부총대장으로서, 시코쿠의 조소카베 씨 토벌에 나가 있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죽음 소식을 접하자마자 히데요시 군에 합류하여,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격파했습니다.
이후 시바타 가츠이에와의 결전인 시즈가타케 전투에서는 히데요시 편에 서서 싸웠고, 도쿠가와와의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도 도쿠가와 씨와 맞섰습니다.
히데요시는 니와 나가히데에게 와카사와 에치젠 두 나라, 그리고 가가 반국을 주어 123만 석의 대영주로 삼았습니다.
1585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1세였습니다.
말년에는 자신의 배를 가르고 결석을 꺼내 히데요시에게 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니와 나가히데에 대한 평가
하시바 히데요시의 성씨 '羽柴(하시바)'의 '羽' 자는 니와 나가히데의 '丹羽'에서 따온 것입니다. 니와 나가히데는 늘 히데요시를 아꼈고, 히데요시 본인도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은 니와 나가히데 덕분"이라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시바타 가츠이에 다음가는 실력자인 니와 나가히데의 존재는 히데요시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그가 천하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무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바타 가츠이에를 비롯한 오다 가문 사람들은 출신이 불명확한 히데요시를 경멸했지만, 니와 나가히데만큼은 예외적으로 히데요시를 아꼈습니다.
품행이 바르고 정무에 충실했으며, 두 마음 없이 오다 노부나가를 섬겼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일을 해내며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 확장을 도왔고, 실수 없이 일생을 마쳤습니다.
실력이 곧 보상이었던 전국시대,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단 안에서 확실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무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