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오랜 역사를 지닌 천황과 조정(궁정)에 대해 과연 어떤 구상을 품고 있었을까요?
정토천황(正親町天皇)의 양위 권고와 삼직(三職) 취임 사양 같은 행보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단순한 권력 장악을 넘어 조정 개혁까지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절대적 권력자가 되어 구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강력한 질서로 일본을 통치하려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초기에는 쇼군의 권위를 활용하려 했다
노부나가의 야망을 실현하려면 당시 최대 권력 세력인 막부와 조정, 이 두 축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구 권위를 부정한다 해도, 그것이 이용 가치가 있다면 극한까지 활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568년 9월, 노부나가는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옹립하여 교토 주변을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권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죠. 반면 쇼군의 보좌 역할인 칸레이(管領)나 부장군 직은 사양하며 막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노부나가와 요시아키는 대립하게 되었고, 요시아키는 아사쿠라·아사이·이시야마 홍안지(石山本願寺) 등을 규합한 노부나가 포위망의 흑막이 되었습니다. 이에 노부나가는 교토마저 잃을 위기에 몰립니다.
이때 노부나가가 주목한 것은 막부보다 상위에 있는 조정의 권위였습니다. 정토천황으로부터 칙명을 받아내어 포위망 세력과의 휴전 협정을 성사시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결국 요시아키가 대립 자세를 끝내 굽히지 않자 노부나가는 그를 교토에서 추방했고, 무로마치 막부는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천황의 양위를 권유하다
무로마치 막부 붕괴 후, 노부나가는 정토천황에게 양위를 권고합니다. 참고로 노부나가 본인은 1578년 우대신(右大臣) 관직을 사임한 상태였습니다.
노부나가는 정토천황보다 17세 연하인 천황의 제1황자 성인(誠仁) 친왕에게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인 친왕이 새 천황으로 즉위하면 그 권위를 자신의 통치에 활용하려던 계산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인 친왕은 갑작스럽게 서거하여 천황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고령에 이른 천황은 상황(太上天皇)이 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조정 내부에서도 현직 천황보다 양위한 상황이 실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정토천황이 양위해도 상황으로서 조정을 장악하면 사실상 지금과 다를 바 없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노부나가의 조정 개혁 구상에는 인세이(院政, 원정)의 폐지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인 친왕에 의한 천황 친정을 명분으로 삼고, 헤이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세이를 폐지하면 주변 세력의 지지를 얻기가 더 수월했을 것입니다.
당시 노부나가의 실력이라면 천황 자체를 몰아낼 만큼 충분했지만, 그 카드를 끝내 쓰지 않았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조정을 존중한다"는 태도를 내세우며 권위를 살짝 드러냈다 숨겼다 하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이죠.
노부나가는 왜 삼직 취임을 미뤘는가?
1582년 5월, 조정은 노부나가에게 쇼군(장군), 간파쿠(關白), 태정대신(太政大臣) 중 하나를 택해 취임해 달라는 소위 '삼직 추임(三職推任)'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답을 모호하게 남긴 채 6월 2일 혼노지의 변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래서 삼직 취임을 미룬 진의는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구 권위를 부정하던 노부나가의 사상에 비추어 보면, 애초에 삼직에 관심이 없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대신 사임 당시 노부나가는 "천하가 평정되면 요직을 받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직 삼직을 받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 조정과의 협의 자체는 계획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노부나가는 세 직책 중 어느 것을 택했을까요?
노부나가는 헤이케(平氏)의 후예를 자칭했는데, 그 선례인 타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이 태정대신에 올랐듯이 노부나가 역시 태정대신을 노렸다고 추측됩니다. 아마도 모리·우에스기를 격파하고 천하포무를 완성한 뒤 태정대신 취임을 매끄럽게 실현하려던 계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혼노지에서 최후를 맞은 나이는 49세였지만, 건강했기에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모반만 없었다면 최소한 10년은 더 천하인(天下人)으로 군림했을 것입니다.
혼노지의 변이 없었다면 노부나가는 태정대신에, 히데요시는 간파쿠에, 이에야스는 쇼군에 올랐을 거란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쇼군직을 히데타다에게 물려준 이에야스처럼, 태정대신 취임 수년 후 그 자리를 노부타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태정대신에 오른 뒤 노부나가는 조정을 어떻게 개혁하려 했을까요?
천황 입장에서 삼직 추임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는 노부나가를 향해 강한 조급함과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쓰히데와 접촉해 모반을 부추겼다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한 설에 따르면 정토천황이 미쓰히데를 꾀어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는 이론도 존재합니다.
설령 혼노지의 변의 흑막이 천황이었다 해도, 그 증거를 남겨둘 리 없겠지요. 혼노지에 얽힌 이런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