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아케치 미쓰히데는 왜 혼노지의 변에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었을까?

1582년 6월 2일, 아케치 미쓰히데(Akechi Mitsuhide)는 교토 혼노지(本能寺)에 머물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Oda Nobunaga)를 급습해 자결로 몰아붙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입니다.

전국시대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이 반역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지에서 배신을 감행하게 된 동기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혼노지의 변 당시의 정세

먼저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노부나가는 교토의 혼노지에서 다도를 즐기며 소수의 경호 인원과 함께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습격한 주인공 미쓰히데는 중국 지방을 공략하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를 지원하라는 명을 받고, 교토 근교 가메야마 성(亀山城)에서 병사 1만 3천 명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하시바 히데요시, 시바타 가쓰이에, 니와 나가히데, 다키가와 가즈마스 등 오다 가문의 핵심 무장들은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도쿠가와 이에야스(Tokugawa Ieyasu)는 다케다 정벌의 공로를 기념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아즈치를 방문한 뒤, 소규모 수행원들과 함께 사카이(堺) 견학 도중이었습니다.

또한 노부나가의 적자인 노부타다는 원래 이에야스의 안내 역할로 사카이에 갈 예정이었으나, 아버지가 교토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정을 변경해 수백 명의 병력과 함께 교토에 머물게 됩니다.

미쓰히데 입장에서 노부나가와 노부타다 부자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구도였을까요? 미스터리는 깊어만 갑니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역 동기

혼노지의 변의 동기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원한설(怨恨説)입니다.

① 원한설

1582년 5월,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초청해 접대했습니다. 그때 접대役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였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접대에 나온 생선을 문제 삼아 미쓰히데를 도중에 해임하고, 대신 하시바 히데요시 구원에 나서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오다 가문은 다케다 씨를 멸문시킨 직후, 다음 목표를 모리(Mōri) 씨로 정하고 히데요시를 파견한 상태였습니다. 히데요시는 빗추 다카마쓰 성(備中高松城)을 포위 공격하고 있었지만 병력이 부족해 노부나가에게 증원을 요청했는데, 이것이 미쓰히데가 접대役에서 해임된 이유입니다. 실제로 호소카와 다다오키, 이케다 쓰네오키, 쓰쓰이 준케이, 나카가와 기요히데, 다카야마 시게토모 등 다른 무장들도 출진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미쓰히데만 특별히 밀려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기서 미쓰히데는 접대役 해임에 대한 굴욕감, 평소 '키빙보(きんか頭)'라 불리며 계속 모욕당했던 것에 대한 분노, 더불어 어머니가 인질로 살해당했던 원한까지 겹치면서 반역을 결심했다는 것이 원한설의 골자입니다.

그래서 미쓰히데는 히데요시를 구원하러 가지 않고, 6월 1일 "노부나가 공께 무열을 보여드리기 위해 교토로 향한다"며 군세를 이끌고 혼노지로 진군했습니다.

그리고 1582년 6월 2일,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유명한 한마디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위 내용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혼노지의 변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나 이 원한설에는 몇 가지 모순점이 있습니다.

원한설의 모순점

첫째, 접대役 해임 건에 관해 "생선이 썩었다"는 이유가 제시되지만, 노부나가 본인이 이에야스 접대용 재료를 직접 확인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생선이 정말 썩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둘째, '키빙보'라 불리며 조롱당했다는 것도, 오히려 노부나가의 친밀함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히데요시도 "원숭이", "대머리 쥐"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애정 어린 표현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셋째, 어머니 피살 건입니다. 미쓰히데의 어머니는 당시 단바 야가미 성(八上城)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성을 공격하자 분노한 성주 측 가신들이 미쓰히데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노부나가의 직접적인 책임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원한설은 훗날 후세에 창작된 서사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② 야망설

아케치 미쓰히데 역시 전국시대를 살아온 무장입니다. 천하를 노릴 권리와 야망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미쓰히데의 가문은 명문 도키(土岐) 씨의 혈통을 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출신 배경이 그의 자부심과 함께 천하를 향한 큰 야망을 품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③ 심리적 동요설

미쓰히데는 정무뿐 아니라 전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혼노지의 변을 보면, 계획도 행동도 허점투성이인 채 충동적으로 저질러진 쿠데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참고로 노부나가는 이시야마 홍간지 공방전에서 눈에 띄는 전공을 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베테랑 가신 사쿠마 노부모리 부자를 추방했고, 또 다른 원로 가신 하야시 히데사다 역시 20여 년 전의 잘못을 이유로 파문시킨 바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냉혹한 처세 방식, 즉 오랫동안 공을 세운 가신조차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미쓰히데를 반역으로 이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④ 흑막설(배후 조종설)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흑막설입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 조정, 천황, 히데요시, 이에야스 등 거론되는 인물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히데요시 흑막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나머지 설에 대해서는 분량상 별도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히데요시 흑막설

혼노지의 변 이후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동기로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중국 지방을 공략 중이던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만약 이 증원 요청이 없었다면, 혼노지의 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증원 요청에는 수수께끼 같은 점이 있습니다.

증원 요청의 명목은 "빗추 다카마쓰성 수공(水攻)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지만, 모리의 대군이 지원에 나선다는 정보가 있어 전황이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청 편지가 도착한 것은 5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리의 원군인 기카와 모토하루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다카마쓰성 구원에 도착한 것은 5월 21일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이미 둑 공사가 완공되어, 히데요시가 만든 호수 앞에서 원군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낙성이 코앞으로 다가온 성을 위해 굳이 증원이 필요했을까요?

일각에서는 이 증원 요청을 히데요시의 아첨 행위로 보기도 합니다. 히데요시가 상황을 정리해 놓으면 노부나가가 마무리를 지으며 기분 좋아할 것이라는 계산이었겠죠. 하지만 당시 적대 세력은 모리뿐만 아니라 호쿠리쿠의 우에스기, 간토의 호조 등이 전선에서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히데요시 혼자만 돋보일 필요는 없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모리의 근거지를 공격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따져볼수록 이 증원 요청은 수수께끼로 가득합니다.

히데요시가 흑막으로 의심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주고쿠 대철환(中国大返し)'의 민첩성입니다.

6월 3일 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히데요시는 6월 6일 비젠 누마지에서 철수를 개시합니다. 대철환이 시작되기까지 준비 기간은 6월 4일과 5일, 단 이틀뿐이었습니다.

도중마다 횃불을 설치하고, 식량을 준비하고, 교체용 말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카마쓰성에서 히메지성까지 약 90km를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 병사 3만 명이 단 이틀 만에 달려왔습니다. 게다가 필요 물자는 해상 운송으로 실었다고 하는데, 배를 조달하고 짐을 실어 보내는 것까지 이틀 안에 가능했을까요?

또 하나 걸리는 점은, 노부나가의 죽음을 알게 된 모리 측이 다카마쓰성 화담이 성립된 직후 히데요시를 추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형 기카와 모토하루는 히데요시 추격을 주장했지만, 동생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를 말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 다카카게는 후에 히데요시의 휘하에 들어갑니다. 이 두 사람의 선택 역시 참으로 미묘합니다.

이것이 혼노지의 변의 히데요시 흑막설입니다.

전국시대 최대의 미스터리인 혼노지의 변을 둘러싼 흑막설은 이외에도 다양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설

조소카베 모토치카설

천황·조정설

아시카가 요시아키설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별도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