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정말 동물보호법인가?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생물 자비령'은 나쁜 법이었을까?

에도 시대를 통틀어 이만큼 유명한 정책은 드물다. 바로 '생물 자비령(生類憐みの令)'이다.

많은 사람들이 역대 15대 쇼군 가운데 이에야스와 이에미쓰 다음으로 이름을 떠올리는 쇼군이 바로 쓰나요시일 것이다. 그만큼 쓰나요시의 생물 자비령은 충격적인 정책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개를 죽이면 참수형
  • 모기를 죽이면 유배형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내린 것으로 알려진 이 법령은 오랫동안 '나쁜 법'이라고 일컬어져 왔지만, 최근에는 쓰나요시 재평가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첫 번째 생물 자비령은 '말 보호령'이었다

이 정책 하면 개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처음에는 말 보호 명령이었다.

에도의 하타모토(직속 가신)들은 비상시에 말을 타야 했다. 그러나 태평성대가 계속되면서 말의 필요성은 점차 사라졌다.

게다가 막부의 연공 미곡에 의존하던 하타모토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져 말을 기를 여유조차 없었다. 그 결과 말을 버리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냥 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말의 다리 힘줄을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채 내버려 두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동물 학대였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쓰나요시는 '말 보호령'을 내린 것이다.

개를 보호하기 위해 에도 곳곳에 '개 저택'을 설치했다

생물 자비령이 반포되기 전, 에도에는 유기견이 매우 많았다.

그 원인은 다이묘 저택에서 기르던 사냥개들이 저택을 탈출해 야생화된 것이었다. 이 유기견들은 종종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는데, 1688년에는 현재의 도코로자와 부근에서 유기견 떼가 날뛰어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한편 무사 중에는 이런 유기견을 시험 베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쓰나요시는 에도에 광대한 '개 저택'을 건설했다.

현재의 나카노 부근에 시설을 지어 약 4만 마리의 개를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다 수용되지 않아 시설이 하나둘 늘어났고, 개 관리 비용은 막부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에도 시중에 유기견을 양산한 장본인인 다이묘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바로 생물 자비령이다.

현대에도 기를 수 없게 된 반려동물을 길에 버리거나 보건소에 넘겨 안락사시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해 탄생한 에도 시대의 생물 자비령을 성급하게 '나쁜 법'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버려진 동물'에는 버려진 아이와 병든 사람도 포함됐다

이 법은 동물 보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인간도 보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자신의 아이나 병든 가족을 망설임 없이 버리는 풍조가 있었다. 길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휘말릴까 봐 모른 척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법은 이런 사회적 약자들까지 규정하고 보호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법은 나쁜 법은커녕 오히려 이런 법이 더 많았어야 했던 것 아닌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친 '생명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69건…

생물 자비령으로 처벌된 사례는 총 69건이다.
세부 내역을 보면 무사 46건, 상공인 15건, 농민 6건, 사찰 관련 2건이다.

특히 백성들을 보호하고 솔선수범해야 할 위치에 있던 무사들의 위반 사례가 많았고, 처벌도 엄격했다. 반면 일반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받았으며, 특히 악질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섬으로 유배되는 정도였다고 한다.

생물 자비령은 22년간 시행되었다. 그 기간 중 처벌 사례가 69건이라면 1년에 약 3건 꼴이다. 많은 사람이 이 법으로 처벌받은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무사가 이 법으로 목숨을 잃을 때는 할복이 원칙이었다. 할복으로 끝나는 것만도 다행인 경우였고, 무사의 명예조차 지킬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참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생물 자비령을 통해 동식물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조상을 존경하는 마음이 무사뿐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일본인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저 세상에서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무덤에 들어가는 오늘날의 합장 문화가 형성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물 자비령의 원래 취지였다.

지진이 발생해도 약탈이나 절도가 거의 없는 일본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아름다움의 뿌리에 쓰나요시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악법'이라 불렸던 생물 자비령이야말로, 세계가 칭찬하는 일본인의 따뜻한 마음의 시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