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에도 막부와 조정(황실)의 관계는?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막부의 전략

에도 막부는 조정으로부터 '정이대장군'에 임명받은 뒤에야 비로소 성립한 무가 정권입니다.

따라서 막부는 언제나 조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으며, 동시에 조정의 권위를 통제하는 섬세한 줄타기를 해야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도 막부의 쇼군(장군)과 조정(황실)의 관계를 중심으로, 막부가 조정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그리고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쳤는지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장군(쇼군)이라는 존재

에도 막부는 약 260년에 걸쳐 태평성대를 이어온 무사 정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사 정권이라 하면 통치 체제의 중심을 막부에서 찾게 되는데,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이를 생각해 보려면 먼저 '쇼군'이라는 관직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쇼군'이라는 칭호는 본래 조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던 동북 지방의 에조(蝦夷)를 정벌하기 위해 설치된 관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후 그 의미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조정은 쇼군에게 무사들의 지배자라는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하게 됩니다.

장군 통치의 정당성이란?

무가 정권의 수장에게는 [천황으로부터 무가의 필두로 승인받았다는 증표]가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한 적이 있습니다. 요시아키가 쇼군에 취임한 뒤 노부나가는 쇼군의 권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천하 통일을 추진했습니다.

노부나가 사후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천황과의 유대를 깊이 하여 결국 천황에 가장 가까운 관직인 간파쿠(관백)에 올랐습니다. 이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반역한다는 것은 곧 고요제이 천황에게 반역하는 것"이라는 구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노부나가와의 차이점은, 농민 출신인 히데요시는 문벌이 필요한 쇼군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간파쿠의 지위를 활용해 천황으로부터 승인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즉,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조정의 증표가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에도 시대 막부와 조정의 관계

천황의 승인이 왜 중요했는지 확인했으니, 이제 도쿠가와 가문이 조정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조정으로부터 쇼군에 임명됨으로써 전국 다이묘에 대한 지휘권을 확보하고 에도에 막부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막부는 금중병공가제법도(禁中並公家諸法度)를 제정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천황의 행동까지 규제했습니다. 실질적인 권력 관계에서 조정 위에 서서 압도적인 권력을 강화해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정 위에 서 있다 해도, 쇼군은 여전히 천황을 중심으로 한 칙임 체계의 관직입니다. 막부의 실질적 권력이 더 높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조정의 신하였습니다.

15대에 걸쳐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는 쇼군이라는 직위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천하에 알렸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 관직을 임명하는 조정과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동시에 천황과 조정이 권력을 행사해 다른 다이묘들과 연결되어 막부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체제를 만드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결국 실질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조정의 권위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했던 것입니다.

금중병공가제법도란?

막부는 실질적 권력을 얻기 위해 천황의 권위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먼저 천황의 양위와 즉위와 관련해서는, 조정을 감시하는 교토쇼시다이(교토소판사)를 두어 천황가가 동요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 감시했습니다. 동시에 막부와 조정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무가전주(武家伝奏)'라는 직책도 탄생했습니다.

또한 막부와 조정의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법적 근거로서 금중병공가제법도를 제정했습니다.

사료를 인용하면, 조문 첫머리에는 "천자(天子)는 제일로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天子第一學問也)"라고 쓰여 있어, 천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문임을 명시했습니다.

무사가 이러한 법으로 천황의 행동을 상세히 규정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연호 개정이나 공경들에 대한 관위 하사 같은 세부 특권에는 막부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의(紫衣) 사건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의 사건은 1629년 고미즈노오 천황이 다이토쿠지의 승려에게 자의를 하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의란 고위 승려에게 하사되는 보라색 가사, 즉 법의를 가리킵니다.

하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천황이 막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하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금중병공가제법도에는 자의를 하사할 때 '사전에 상신할 것'이 규정되어 있었고, 막부는 이를 근거로 고미즈노오 천황의 칙허를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이에 반발한 다이토쿠지의 승려 다쿠안 소호는 유배를 당했습니다.

천황 스스로 항의의 뜻으로 양위하여 황위를 딸 메이쇼 천황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막부의 의향이 조정의 칙허보다 우위에 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천황이 쇼군이라는 관직을 임명하는 이상, 막부는 체면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 전후로 천황과의 화해 조치도 병행되었습니다.

1620년에는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딸 도쿠가와 가즈코를 고미즈노오 천황에게 입궁시켰습니다(*). 황실과의 혈연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양측의 관계를 한층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 입궁(入内)이란 여어(女御) 등이 되어 공식적으로 후궁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자의 사건 이후 3대 쇼군 이에미쓰는 고미즈노오 천황을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당시 예물로는 황령(천황의 영지) 7,000석의 기증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막부는 단근질과 당근을 적절히 병행하며 조정과의 관계 악화를 막았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