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한반도와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이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전면전인 러일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주요 전장은 한반도, 만주 남부, 그리고 일본해 일대에 걸쳐 펼쳐졌습니다.
1905년 9월 5일,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러시아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며 강화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고, 전쟁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습니다. 반면 러시아 제국은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아시아 국가인 일본이 그때까지 세계를 지배해 온 유럽 열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식민지 지배를 받던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고, 전쟁 이후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일본처럼 되고자 하는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러일전쟁의 원인과 배경
러일전쟁 발발의 주된 원인은 한반도와 만주 지배권을 둘러싼 양국의 충돌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찾아 남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1896년, 러시아는 청나라와의 밀약을 통해 동청철도 부설권을 획득했습니다. 이를 통해 만주를 관통해 러시아 극동의 항구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길을 확보하는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1898년에는 러시아가 청나라에 압력을 가해 만주 남부 요동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여순항의 조차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되었지만, 만주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병력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에는 수송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확보하고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1904년까지 극동 지역에 주둔할 사단 수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1903년 만주에서 철병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부분적으로만 이행했고, 일본은 러시아가 합의를 번복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04년 2월 8일, 일본 해군 주력함대가 여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날 일본 육군도 한반도에 상륙하여 한반도를 장악했습니다.
같은 해 8월 10일, 여순항에서 출항한 러시아 함대와의 황해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했습니다. 나흘 뒤 일본은 제해권을 확보했고, 8월 28일부터 9월 4일까지는 요양 부근에서 일·러 육군의 야전이 벌어져 러시아군이 후퇴했습니다. 10월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러시아군의 증원 부대가 도착하자, 일본군은 전세를 만회하려는 러시아군과 다시 격돌했습니다.
일·러 양군 모두 막대한 희생을 치렀고, 1905년 1월 1일 여순항의 러시아군 사령관은 자신의 판단으로 항구를 일본군에 넘겨주었습니다.
육상 최후의 결전인 봉천 회전에서는 러시아군 9만 명, 일본군 7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를 내는 장기전 끝에 봉천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해상에서는 5월 27일 쓰시마 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이끄는 일본 해군 주력함대가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했습니다.
러일전쟁의 전후 처리
러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여순항과 요동반도 일부, 그리고 동청철도(남만주철도)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고, 사할린 섬 남부를 영토로 얻었습니다. 러시아는 만주 남부를 청나라에 반환하는 대신, 일본의 대한(韓國) 지배권을 인정했습니다.
러일전쟁은 일본에게 있어 처음 치른 본격적인 총력전이었습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한 병력은 약 108만 명에 달했으며, 민간에서 동원된 인부까지 포함하면 약 31만 8천 명이 추가로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이 승리한 이 전쟁에서 일본군의 전사자는 약 8만 4천 명으로, 청일전쟁의 약 6.5배에 이릅니다. 반면 러시아군의 전사자는 약 5만 명으로 전해집니다.
질병으로 인한 피해까지 포함하면 일본측의 총 손실은 37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국력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던 강대국 러시아를 기적적으로 꺾고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에 대한 지배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혁명 운동이 확산되며 국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격파했지만, 결코 값싸게 얻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군은 전쟁의 참상을 국민에게 숨긴 채 '승리'라는 사실만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은폐는 훗날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적적인 승리였던 러일전쟁은 일본의 운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