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일본이 총기 사회가 되지 않은 이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 사냥' 덕분?!

일본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게 "일본의 무엇이 가장 좋으냐?"라고 물으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은 바로 "치안"입니다.

매일 살다 보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애초에 일본은 그렇게 안전한 나라였을까요?

일본과 미국, 극과 극인 총기 규제

사실 오늘날 일본의 치안은 센고쿠 시대 삼영걸 중 한 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실시한 '칼 사냥(刀狩)'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검은 현대로 치환하면 총에 해당하는데, 일본에서는 특정 자격을 가진 사람만 총기를 소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갈려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총기 규제를 시행하는 일본과 세계에서 가장 느슨한 총기 규제를 유지하는 미국. 이런 극단적인 차이에는 각국의 역사적 배경이 깊이 얽혀 있는 듯합니다.

미국 개척 시대에는 국토가 워낙 광활해서 보안관이 전 지역을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스스로 가족과 재산을 지켜야 했습니다. 인디언의 습격에 대비해 모두가 총으로 무장하고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 사냥

반면 일본에서는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농민 반란을 막기 위해 무기를 수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칼 사냥'입니다. 히데요시의 칼 사냥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지만, 사실 일본 최초의 칼 사냥은 1228년 가마쿠라 시대에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가 고야산 승려들을 상대로 실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히데요시의 칼 사냥으로 본격화된 일본의 무기 규제는 에도 막부로 계승되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6년에는 군인·경찰 등 제복 착용자를 제외하고 칼을 휴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폐도령(廃刀令)'이 공포되었습니다.

이 폐도령은 허리에 칼을 차는 '패검(佩剣)' 행위만 금지했을 뿐, 소유나 보관 자체를 막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사에게 칼은 실용적인 장비라기보다 신분을 증명하는 상징의 의미가 더 컸기 때문에, 폐도는 곧 무사의 특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GHQ의 칼 사냥?!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GHQ(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총포 등 소지 금지령'을 내려 사냥·경기용 총기와 미술 목적 이외의 칼 소지를 전면 금지했고, 일본 전역에서 무려 300만 점에 달하는 총과 칼이 몰수되었습니다.

당시 철갑도 베어버리는 일본도의 위력에 미군 병사들이 "일본 칼, 대단하다~"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실제로 말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어쨌든 칭찬한 모양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명검이 해외로 흘러나가기도 했습니다.

GHQ의 칼 사냥 이후 현재의 총포검법이 정비되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총기와 거리가 먼 나라" 일본이 탄생했고, 오늘날의 뛰어난 치안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히데요시의 칼 사냥에서 출발해 현대까지 이어진 일본의 평화롭고 안전한 모습은, 어쩌면 노벨 평화상에 걸맞은 성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무리하며

학교 역사 시간에서 "히데요시는 농민 반란을 막기 위해 칼 사냥을 했다"는 내용을 별다른 강조 없이 가볍게 짚고 넘어간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기 사회가 된 미국의 현재를 생각해보면, 좋든 싫든 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중요한 사건인 만큼 이 부분도 좀 더 자세히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 총기 사회가 되지 않은 것은 히데요시의 칼 사냥 이후 민중이 무기를 가질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원래 농민 출신이었던 히데요시야말로 누구보다 농민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센고쿠 다이묘들은 잇키(一揆, 농민 봉기)와의 전투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히데요시 역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시절 이세 나가시마와 호쿠리쿠 지방에서 잇키에 시달린 바 있습니다.

혼노지의 변 이후 열린 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배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히데요시의 손이 아니라 무장한 농민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히데요시는 결속한 농민들의 이러한 공포스러운 힘을 알았기에 칼 사냥을 단행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오늘날 일본의 치안은 히데요시의 칼 사냥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전후 GHQ의 '칼 사냥 = 총포 등 소지 금지령'이 더 큰 요인입니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칼 사냥이 '민중은 무기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관념을 일상 속에 뿌리내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역할 또한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