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조슈 정벌 실패 뒤 폭발한 민심, 요나오시 잇키와 '에에 자나이카'

도쿠가와 막부 말기를 뒤흔든 것은 외세와 웅번(雄藩)들이 벌인 존왕양이 운동만이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민중 운동, 이른바 '요나오시 잇키(世直し一揆)' 역시 막부 권력을 크게 흔드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봉기의 발생은 백성들이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결과였으며, 결국 막부 붕괴의 촉매제가 되었다.

민중의 '세상 바로잡기' 소동

일본사에서 요나오시(世直し)란 에도 시대 중기 이후 빈곤의 구제와 평등한 사회의 실현을 추구했던 민중의 변혁 의식을 가리킨다. 부당하게 지배하고 수탈하는 지배층에 맞서 일어난 봉기나 파괴 소동과 연결되어 이해되는 개념이다.

존왕양이 세력이 기세를 올리던 1866년은 봉기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해였다. 5월에는 오사카와 에도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우치코와시(打ち壊し, 상점 습격·약탈)가 발생했다. 이어 6월에는 무사시국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무쓰국 신다(信達) 지방에서 일어난 잇키가 무사시 방면으로 확산되었다.

봉기가 이 해에 집중된 이유는 오랫동안 억압받아 온 백성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제2차 조슈 정벌로 인한 공납 부담 증가, 장기전에 대비해 각 번이 군량을 비축하면서 일어난 쌀값 급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무렵 봉기가 잇따랐던 배경에는 개국(開國) 이후의 물가 급등, 막부와 각 번의 재정 악화로 인한 과중한 세금, 그리고 격렬한 정국 다툼이 낳은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세상 형편이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세상이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법인데, 실제로 야마토의 덴리교(天理教)와 비젠의 구로즈미교(黒住教) 같은 교파신토(教派神道) 계열의 신흥 종교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들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은 신분 질서의 모순 속에서 고통받던 농민 등 서민들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에에 자나이카' 소동

그뿐만 아니라 1867년에는 주로 도카이(東海)·히다(飛騨) 지방을 중심으로 민중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에에 자나이카(ええじゃないか)' 집단 무흥이 일어났다. 이세 신궁 등 유명 신사의 부적이 하늘에서 하늘하니 떨어졌다는 소문이 계기가 되어, 군중들은 "에에 자나이카", "초이토세"를 외치며 광란의 축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과 생활을 내던지고 소동에 몸을 던진 백성들의 모습은 막부의 통치 질서를 크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에에 자나이카' 소동이 사실은 토막파(討幕派)의 인위적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근거로는 소동이 토막파의 핵심 세력이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 영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또한 소동이 유행한 시기가 사쓰마 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 급진 공가(公家)인 이와쿠라 도모미가 밀칙(密勅) 강하를 계획하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도 제시된다.

더 나아가 교토에서 벌어지는 토막파의 움직임이 막부에게 들키지 않도록, 민중을 부추겨 각지에서 소란을 피우게 하고 이를 은폐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진상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격동의 시대가 전환점을 맞기 직전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민심이 여러 형태로 폭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