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대정봉환(大政奉還), 막부의 마지막 카드: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정치 구상

제2차 조슈 정벌의 패배와 막부 권위의 추락

1866년 벌어진 제2차 조슈 정벌에서 막부군은 조슈 번에 패배했고, 곧이어 제14대 쇼군 이에모치가 전장에서 병을 얻는 불운까지 겹쳤다. 패색이 짙어진 것을 자각한 막부 측은 조슈 번과의 휴전을 결정한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는 막부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개혁

같은 해 12월,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제15대 쇼군으로 취임한다. 그는 프랑스의 지원* 아래 정치와 군사 양면에서 개혁을 추진하며 막부 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 고메이 천황이 돌연 세상을 떠난다. 암살설도 존재하지만, 공무합체 노선을 지켜온 고메이 천황의 죽음은 이와쿠라 도모미 등 급진 공경들의 세력을 다시 강화시켰고, 사츠마·조슈 양번의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 사츠마·조슈는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또한 1867년 효고 항 개항 문제를 둘러싼 유력 번주 4인의 회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오히려 요시노부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막부의 존재감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의정체론을 통한 주도권 확보를 포기하고 무력 토막 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측마 번은 조슈 번과 비밀리에 출병 협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누구나 아는 삿초 동맹(薩長同盟)이다.

토벌을 피해 성공적으로 이어진 대정봉환의 길

무력 토막 운동의 고조에서 대정봉환(大政奉還)에 이르는 길에는 단순한 승자인 삿초파와 패자인 구막파의 대립 구도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의정체론을 내걸며 급부상한 도사 번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팽팽한 긴장 국면에서 또 다른 각도에서 정치 주도권을 노린 것은 고토 쇼지로를 중심으로 한 도사 번이었다. 8월 18일의 정변 이후 번주 야마우치 도요노부와 함께 존왕양이파의 급진 집단인 도사 근왕당을 억누르고 번론을 공무합체로 되돌리는 데 성공한 고토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카모토 료마와 의기투합하게 된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선중팔책(船中八策)]처럼, 유럽 의회 제도의 도입 구상을 흡수해 의회 정치론을 주창한 료마는 번주 도요노부에게 대정봉환을 진언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정봉환이란 조정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무를 조정에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도사 번이든 요시노부 본인이든, 대정봉환이 실현되어도 조정에는 정치를 집행할 힘이 없고 실권은 도쿠가와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정봉환을 진언한 도사 번의 구상은, 쇼군이 정권을 반환하게 함으로써 삿초가 주도하는 무력 토막을 종식시키는 한편, 요시노부를 신정부 회의의 의장으로 앉혀 권력 균형의 중심에 서려는 것이었다.

도사 번은 대정봉환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사측마 번과도 협약을 맺고 있었다. 도사 번은 사측마 번을 공의정체파로 끌어들이기를 원했지만, 사측마 번은 대정봉환이 요시노부에게 거부당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오히려 토막의 명분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측마 번의 우려와 달리, 대정봉환 이후에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도사 번의 대정봉환 방침에 승낙했다. 이렇게 하여 대정봉환 상표는 1867년 10월 14일 조정에 제출되었다.

대정봉환 이후 요시노부의 정치 구상

대정봉환 이후 요시노부의 정치 구상은 형식적으로 권력 분립을 도입하고, 쇼군이 임시로 요직을 겸임하며, 막부가 행정권을, 각 번의 다이묘와 번주로 구성된 상원(上院)이 입법권을 담당하는 등, 막번 체제를 기반으로 한 근대적 정치 체제를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황은 여전히 상징적 존재로 위치하게 될 예정이었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요시노부는 도쿠가와 가문 중심의 종래 막부와는 차원이 다른, 구체적인 근대 정치 구상을 갖춘 인물이었던 셈이다.

한편 조정 내 이와쿠라 도모미 등 급진 공경들과 연계한 삿초 양번은 처음부터 밀칙(密勅)을 받아 두고 있었지만, 도사 번의 뜻밖의 대정봉환 구상 때문에 토벌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주도권을 도사 번에게 빼앗긴 삿초 동맹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정에서 쿠데타를 감행했고, 이후 도바·후시미 전투에 이르기까지 공의정체파와 무력 토막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