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0년 오다와라에서 호조씨(北条氏)가 멸망하자, 당시 간파쿠(관백)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간토 지방으로의 전봉을 명했습니다.
당시 에도 주변은 오타 도칸이 축성한 에도 성이 있었지만, 광대한 습지가 펼쳐져 있었고 인구는 오다와라보다 적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이에야스에게는 결코 만족스러운 땅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간토 지방에는 가마쿠라 막부의 중심지였던 가마쿠라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가신들은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한 도시 개발을 진지하게 추진할 것을 진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오다와라나 가마쿠라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내다본 끝에 에도를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했습니다.
오사카를 본떠 만들어진 에도
이에야스가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에도 성의 개축 공사였습니다.
에도에 입성했을 당시의 성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적의 침입에 대비해 방어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의 황거 일부를 덮을 정도로 내륙까지 들어온 바다를 매립하고, 하천의 흐름을 바꾸는 등 대규모 공사를 단행하여 새로운 성을 완성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사카의 도시 구조를 참고하여 해안 지역 매립 등 자신만의 도시 계획에 기반한 대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에도와 오사카의 공통점은 평탄한 땅이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많은 하천이 만으로 흘러든다는 점입니다. 당시 도요토미 정권의 중심에 있던 이에야스는 오사카의 도시 구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에야스는 스미다강 하구 부근이 선착장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곳을 정비하면 간토 지방 물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간다산을 깎아 흙을 운반해 바다를 매립하고 도시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후 현재 황거 동쪽에 도산보리(道三堀)가 완성되면서 배가 물자를 내륙 깊숙이 운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오나기강과 간다강의 방수로가 만들어지며 내륙 지역과의 물자 수송이 한층 원활해졌습니다.
주군 이에야스의 명령 아래 에도의 도시 계획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가신들은 부지런히 에도의 거리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기질은 훗날 '에도코(에도 사람)'에게까지 이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대화재로 사라진 에도의 거리
에도에는 '화재와 다툼은 에도의 꽃'이라는 말이 남을 정도로, 화재가 잦은 도시였습니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화재로 광대한 도시 지역이 불타 없어진 사례는 드물 정도였습니다.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明暦の大火)로 이에야스가 만들어 놓은 에도의 거리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이었던 에도 성의 천수각마저 불타 버렸습니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는 에도의 거리를 처음부터 다시 재건하기로 합니다. 이때 무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천수각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도쿠가와의 천하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 에도의 대화재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에도의 구체적인 재건을 위해서는 여러 번의 다이묘 가문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의 자금이 재건 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다이묘의 공식 저택인 카미야시키(上屋敷, 상저택)는 에도의 중심부에 배치되었고, 나카야시키(中屋敷, 중저택)과 시모야시키(下屋敷, 하저택)는 의도적으로 교외에 마련되었습니다.
물론 막부가 토지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건설 비용은 각 번이 직접 부담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저택을 짓는 장인들, 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상인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면서 에도 곳곳에 작은 다이묘 마을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모여든 장인과 상인들이 에도에 정착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에도코(에도 사람)'라는 정체성이 생겨났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의 에도 도시 재건은 제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츠나의 시대에 이루어졌지만, 그 기반은 초기 에도 시대에 이에야스가 쌓아 올린 경험과 비전 위에 세워졌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문화, 그리고 이에야스가 그린 에도 건설의 명확한 청사진을 계승함으로써, 에도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다이묘 저택이란?
앞서 카미야시키(상저택), 나카야시키(중저택), 시모야시키(하저택)라는 용어가 언급되었으므로, 다이묘 저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 시기에 막부는 다이묘들이 에도에 거주할 수 있도록 토지를 하사했고, 각 다이묘는 그곳에 저택을 지어 거처로 삼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메이레키 대화재에서 500채가 넘는 다이묘 저택이 불타 없어졌으며, 이후의 재건 과정에서 다이묘과 영주들의 본저택은 카미야시키(상저택)으로서 에도의 중심부에 지어졌습니다. 은거한 전 영주들이 거주하는 나카야시키(중저택) 역시 마련되었고, 에도 교외에는 별장 격인 시모야시키(하저택)도 함께 건설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