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는 대륙과 한반도에서 논 벼농사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일본의 벼농사 문화는 규슈 북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시점은 기원전 5세기경으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이 유력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규슈 북부에서 출토된 야요이 시대 초기 토기를 탄소14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기원전 900~800년경으로 집중되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일본 열도의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0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벼농사의 전파 속도에 대한 재해석
그동안 벼농사는 불과 100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킨키(近畿) 지방까지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 학설이 입증되면, 벼농사는 수백 년에 걸쳐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몬인이 즉각적으로 벼농사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고, 도래인(渡來人)이 짧은 기간 안에 일본 열도를 정복했다는 통념도 수정할 필요가 생깁니다.
조몬인과 도래인은 충돌 없이 공존했다?
'정복'이라는 표현을 쓰면 충돌의 이미지가 따르기 쉽지만, 조몬인과 도래인 사이에 실제 충돌이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야요이 문화가 시작된 무렵 도래인만으로 구성된 마을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몬 문화와 야요이 문화가 한 마을 안에 공존하는 사례는 존재합니다. 즉, 양 집단이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다수의 도래인이 건너와 다수파가 되어 야요이 문화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도래인과 토착 조몬인이 융합되고 조몬인이 도래인의 문화를 수용하는 가운데 야요이 문화가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일본 열도 전역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에서는 조몬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며, 양자의 특징이 섞인 중간 형태의 문화가 남아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야요이 문화가 더 오래되면 일본 고대사가 달라진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연호와 서기(西紀)를 병용하지만, 메이지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초대 진무 천황의 즉위로 여겨지는 기원전 660년을 원년으로 하는 황기(皇紀) 역시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로 2019년은 황기 2679년에 해당합니다.
일본이 2679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이 연대는 조몬 시대 후반에 해당합니다. 당시 일본에는 아직 국가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이 연대는 부정적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벼농사 문화의 시작이 기원전 10세기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동안의 관점이 크게 재정립될 수 있습니다.
『논형(論衡)』에 남아 있는 '왜인'의 기록
중국 후한 말기에 저술된 왕충(王充)의 『논형』에는 "주나라 시대에 천하가 태평하자 월상(越裳)이 흰 꿩을 헌상하고 왜인(倭人)이 창초(鬯草)를 공납하였으며", "성왕(成王)의 시대에 꿩이 헌상되고 왜인이 공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왕은 기원전 11세기경의 인물입니다.
그동안 조몬 시대에는 '왜(倭)'라 불릴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져 이 기록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 500년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최근 연구가 입증된다면, 이 무렵 이미 왜국(倭國)과 그 권력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만약 야요이 시대의 시작이 500년 앞선다는 학설이 입증된다면, 진무 천황의 건국 신화를 비롯한 일본 신화의 평가와 위상, 나아가 일본 고대사 전체가 다시 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