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두 사람은 전장에서 쓰러지지 않고 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본의 정점에 군림했던 이들은 물론 전속 의사를 두고 있었지만, 정작 말년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일본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인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으며, 의식이 혼미해지는 증상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병명으로는 위암, 매독 등이 거론되었지만, 현대 의사들의 견해로는 각기(脚氣)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반복된 의식 혼미는 각기에서 비롯되는 베르니케 뇌병증과 같은 증상입니다.
각기는 히데요시 시대 귀족 계급에게 흔한 병이었습니다. 원인은 비타민 B1 결핍입니다. 비타민 B1은 쌀겨에 풍부하고 도정된 흰쌀밥에는 적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탄수화물과 알코올을 과다 섭취하면 비타민 B1이 부족해지기 쉽습니다.
아마도 천하 통일 이후 누리던 권력자다운 식생활이 그를 병들게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히데요시의 주치의, 만세 겐사쿠
만세 겐사쿠(曲直瀬玄朔)는 당시 수많은 전국 무장과 상류층의 병을 치료하던 저명한 의사였습니다. 물론 천하인(天下人)이 된 히데요시 역시 그를 깊이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1595년,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가 모반 혐의로 추방당하고 할복하면서, 히데쓰구 관련 인사들이 연좌제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당시 히데쓰구의 의사이자 참모였던 만세 겐사쿠도 함께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겐사쿠는 각기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었지만, 먼 곳으로 유배되어 히데요시의 각기를 치료할 수 없었고, 결국 히데요시는 159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인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이겠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상당한 건강 관리광이었습니다.
보리밥을 먹고 검소한 식사에 전념했으며, 매사냥으로 운동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건강에 대한 집착이 병을 낳기도 했는데, 직접 약초원을 만들어 그 약초로 자신의 병을 치료할 약을 조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야스의 죽음으로 가장 유명한 원인은 바로 '텐푸라 과식'입니다. 평소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던 이에야스도 진귀한 텐푸라 앞에서는 절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텐푸라를 먹은 지 석 달 후, 복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중독이라는 설도 있지만, 죽기까지 석 달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설에 따르면 이에야스는 위암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이에야스는 배를 만졌을 때 덩어리가 만져졌는데, 위암 말기에는 복부의 덩어리가 만져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이를 '기생충 탓'이라 여기며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만든 약을 계속 복용했습니다.
이에야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국 무장들은 된장, 우메보시, 소금 등으로 항상 염분을 보충하려 했습니다.
과도한 염분 섭취가 위암과 위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증식을 촉진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으며, 이에야스 역시 과다한 염분 섭취로 인해 위암에 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이에야스는 위암을 앓고 있었고, 진귀한 텐푸라 과식이 병세를 악화시켰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야스의 주치의, 가타야마 소테쓰는 다른 진단을 내렸다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이에야스에게도 가타야마 소테쓰(片山宗哲)라는 주치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에야스의 배에 있는 덩어리를 만져보고도 '기생충 탓'이라고 진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에야스에게 강한 독성이 있는 약이니 복용을 중단하라고 권했지만, 자신의 진단과 약에 확신이 있던 건강 관리광 이에야스는 화를 내며 소테쓰를 유배 보내버렸습니다.
결국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한 이에야스는 병세가 악화되어 16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야스는 74세까지 살며 다른 전국 다이묘보다 오래 살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조금 더 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모두 명의라 불리는 사람을 유배 보내고, 가장 의사가 필요했던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떡은 떡집'이라는 속담이 있듯, 전문가인 의사의 말을 들었더라면 일본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