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친모를 적진에 바치다?! 아케치 미츠히데 '친모 살해' 설화의 진실

옛날부터 친부모 살해는 중대한 죄악으로 여겨졌습니다. 1995년까지 일본 형법에서는 존속살해죄가 일반 살인보다 무거운 죄로 취급되어, 동기와 관계없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이후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1995년 형법 개정 과정에서 삭제되었지요.


근세에는 중죄였지만, 천하가 난리통이던 전국시대에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라는 논리로 부모를 해치는 사례도 존재했습니다.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麒麟がくる)'에서도 사이토 요시타츠가 아버지 도산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좋은 예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아버지 살해자의 오명'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이 시대에도 친부모 살해가 결코 용납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바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친모 살해입니다. 미츠히데는 어떻게 친모 살해범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애초에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탄바를 공격하고 어머니를 적에게 바쳤다?!

먼저 미츠히데의 친모 살해 설화의 근거가 된 이야기와 그 배경부터 짚어보겠습니다.

1575년, 아케치 미츠히데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탄바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 나라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탄바의 붉은 귀신'이라 불리던 아카이 나오마사의 군세였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무장인 미츠히데는 공략을 순조롭게 진행해 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연내에 함락될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전환이 잘 풀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말,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때까지 미츠히데를 따르던 탄바 국인 하타노 히데하루가 갑자기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가네가사키에서 배후를 위협당한 미츠히데는 전후로 협공을 받아 패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츠히데의 패전 소식을 접한 노부나가는 탄바 조기 공략을 포기하고 장기전으로 방침을 전환합니다.

이에 미츠히데는 일단 탄바를 떠나 호쿠리쿠, 셋쓰 등지를 전전하며 싸웠고, 그 고생 끝에 몇 번이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목숨을 건진 미츠히데는 1578년 다시 탄바 공격을 결심하는데...

일화에 따르면 이번에는 하타노씨의 완강한 농성에 크게 시달렸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성문을 열게 만들고자 했던 미츠히데는 계책을 세웁니다.

그 전략은 하타노씨와의 강화였습니다. '하타노씨가 항복하면 탄바의 영지와 가문의 존속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강화를 맺고 성문을 열어놓고도 약속을 파기하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물론 하타노씨는 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츠히데는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 오마키노카타(お牧の方)를 하타노씨의 거성 야가미성에 인질로 보내 강화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하타노씨도 '여기까지 해줬으면 거짓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미츠히데의 상사인 노부나가가 약속을 깨뜨립니다.

노부나가는 약속을 어기고 하타노씨를 처형했고, 분노한 하타노 가신들은 인질이었던 오마키노카타를 살해했습니다. 이것이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 대한 원한을 품고 혼노지의 변에 이른 배경이라고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미츠히데 역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고 동의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결국 미츠히데는 하타노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친모 살해범'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구가 진행되자 드러난 의문점들...

미츠히데의 '친모 살해'설이 사실이라면 그는 사람의 피부를 뒤집어쓴 악마일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사의 횡포로 어머니를 잃은 셈이므로 혼노지의 변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라 예로부터 많은 역사소설과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고, 실제로 아케치 미츠히데의 가장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의문스러운 점이 다수 밝혀지면서, 이 일화는 '비사실적 창작'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일화가 기록된 사료 자체에 문제가 있다

우선 이 일화가 처음 기술된 사료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일화는 에도 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의 업적을 정리한 『노부나가기(信長記)』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실제로 이 사료는 혼노지의 변 이후 100년이 넘은, 노부나가를 직접 아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은 시점에 집필되었기에 창작의 냄새가 물씬 나는 기록입니다.


게다가 통설적으로 이 책은 오제 호안이 저술한 『甫庵信長記』를 가리킵니다. 이 책은 신뢰도가 낮고 오류가 많다고 알려져 있어, 본래 실수투성이였던 작품이 사료처럼 각색된 것이라 믿기 어렵습니다.

쉽게 비유하면, 전국 시대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것을 진짜 역사라고 주장하는 수준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 이 작품은 오타 규이치의 『신초코기(信長公記)』와는 전혀 다른 책입니다.

유력 사료인 오타 규이치의 『신초코기』와는 내용이 맞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부나가의 옛 가신이었던 오타 규이치가 남긴 유력 사료 『신초코기』의 내용과 미츠히데 친모 살해설이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미츠히데가 하타노 공격에 고전했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신초코기』에 따르면 미츠히데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세했습니다. 이전 침입 때 활약했던 아카이 나오마사는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고, 두 번째 침입에서도 특별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환이 우위에 있는 쪽이 굳이 어머니를 바쳐가며 강화 교섭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또한 적진의 하타노씨 역시 끝까지 철저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전환이 불리해져도 그 의지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상의 점들을 종합하면, 아케치 미츠히데든 하타노 히데하루든 어느 쪽 입장에서도 어머니를 인질로 내어준다고 해서 전쟁이 종결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역사는 더 잔혹했을까?

이상의 검토 결과, 미츠히데의 친모 살해 의혹은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창작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미츠히데가 야가미성을 공격했을 때의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친모 살해범'이라는 소리를 듣는 차라리 나을 정도의 잔혹한 작전으로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히데요시도 중국(주고쿠) 원정 때 두 차례에 걸쳐 '병량공격(兵糧攻め)'을 감행했습니다.


병량공격은 '적성의 식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려 그 마음을 꺾는' 전술입니다. 미츠히데는 성을 포위한 뒤 해자와 울타리를 쌓아 쥐 한 마리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완벽히 고립시켰습니다.

병량이 떨어지자 성안 사람들은 풀뿌리를 뜯어먹기 시작했고, 그마저 다하자 소와 말을 잡아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소와 말을 식용으로 삼는 육식 문화가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엄금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식량이 바닥나고 성은 구원을 애원하는 목소리가 그칠 줄 모를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하타노씨는 탈출을 엄금했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성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참혹해서 미츠히데 자신도 '저토록 쇠약해진 인간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끝내 버티지 못한 하타노씨는 병사를 내보내 결사적인 총공격을 감행합니다. 그 시대에는 농성하는 적을 철저히 몰아붙이는 것이 상식이었으므로, 잔혹한 무장의 방식이라 해도 당대의 보편적인 전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올해의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에서 이 공성전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