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란?
야요이 시대라는 이름은 도쿄도 분쿄구 야요이(彌生)정에서 토기가 발굴된 것이 계기가 되어 붙여진 명칭입니다.
조몬 시대와 비교했을 때 야요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금속기의 등장과 벼농사의 보급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금속기가 등장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100% 사용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석기도 활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에서도 다음과 같은 함정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야요이 시대에 철이 사용되면서 그때까지 쓰이던 석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서술은 틀린 설명입니다. 금속기가 보급되었어도 석기는 계속 병용되었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세요.
참고로 야요이 시대에 유행한 금속기는 청동기와 철기였으며, 용도가 뚜렷하게 구분되었습니다.
- 청동기: 동탁(銅鐸)과 같은 제사 용품으로, 주로 정치·의례에 사용
- 철기: 무기나 농기구처럼 실용적인 도구로 많이 사용
벼농사가 가져온 사회 변화
야요이 시대의 또 다른 큰 변화는 바로 벼농사(수전 농업)의 시작입니다. 대륙에서 전해진 벼농사는 규슈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벼농사가 전파되면서 다음과 같은 사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 벼농사를 통한 분업 → 신분·계급의 탄생
- 집단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등장
- 쌀 비축량의 차이 → 빈부 격차 발생
- 마을과 국가 간의 토지·수확물을 둘러싼 다툼
- 요시노가리 유적과 같은 환호 집락(도랑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탄생
- 야요이 시대 후반의 대규모 전쟁 ← 고지대 마을에서 그 흔적이 발견됨
조몬 시대의 생활 방식
벼농사가 전해지기 전 조몬 시대는 주로 수렵, 어로, 채집 중심의 시대였습니다.
- 수렵: 매머드 같은 사냥감을 잡아 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음
- 채집: 도토리나 견과류를 따서 먹음
- 어로: 뼈로 만든 도구로 물고기를 잡아 필요한 만큼만 먹거리로 사용
농경 사회의 시작과 지도자의 등장
농경 문화가 시작되면 땅을 개간하고 좋은 흙을 들여오며, 물길을 만들어 배수를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경작지가 넓어질수록 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었죠.
농사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조직하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곧 집단의 지도자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하나의 집단을 '국(國)'이라고 불렀습니다.
빈부 격차와 마을 간의 충돌
생산된 쌀은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축하게 됩니다. 쌀의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비축량이 적은 마을과 많은 마을로 나뉘었고, 이것이 빈부 격차로 이어졌습니다.
흙이 척박하고 수확량이 적은 가난한 마을은 부족한 쌀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결국 가난한 마을들이 쌀과 비옥한 땅을 노리고 부유한 마을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렇게 마을 간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환호 집락과 고지대 마을
공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그 대책이 바로 요시노가리 유적과 같은 환호 집락(도랑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위지 왜인전(魏志倭人傳)』에는 '왜국 대란(倭國大亂)'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높은 지대에 고지대 마을(고성 집락)이 형성되었습니다.
벼농사가 가져온 새로운 도구들
벼농사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면서 동시에 새로운 도구들도 탄생했습니다.
야요이 시대 후반부터는 그때까지의 습전(水田)보다 관개 시설을 갖춘 밭(건전)이 늘어났습니다. 습지와 달리 마른 흙을 가려면 더 단단한 도구가 필요했는데, 이때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그 결과 밭의 생산 환경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또한 조몬 시대의 수렵 도구였던 것들은 무기로 진화하여 마을 간의 분쟁에 사용되었습니다.
야요이 토기의 특징과 용도
토기는 조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야요이 시대에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야요이 토기는 조몬 토기보다 얇고 단단하며 색이 밝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색과 두께의 차이는 조몬 토기와 야요이 토기의 굽는 방식(소성 방법)의 차이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용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곡물을 찌는 등의 조리용
- 저장용 항아리
- 무덤(항아리 무덤, 옹관묘)
- 음식을 담아 내는 그릇
- 물을 긷는 그릇
야요이 시대에서 고훈 시대로
히미코가 사망한 후에는 대형 고분(거대한 무덤)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국가 간의 충돌이 반복되면서 약한 국가는 강한 국가에 흡수·통합되었습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국가가 여러 변화를 거치며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사후 야마토 정권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물론 이는 여러 학설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여 시대는 야요이 시대에서 고훈(고분)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